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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어렵다던 수술, 한국서 성공" 새 삶 찾은 미국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찰리 칼슨씨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서울아산병원]

지난 2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찰리 칼슨씨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서울아산병원]

지난 22일 금요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10층 간 이식 병동에서는 특별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간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찰리 칼슨의 46번째 생일이었다. 지난해 12월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뒤 두 달 넘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칼슨에게 이번 생일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미국 병원에서도 “수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아 마지막 희망을 안고 한국에 왔다. “새해를 맞을 수 있을지, 생일에 가족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몰랐는데….” 칼슨은 3개월 넘게 함께한 간 이식팀 의료진이 준비해 준 생일잔치에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가 국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두 달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미국인 간 경화 환자 찰스 칼슨(47)이 부인이 기증한 간 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복해 25일 미국으로 갔다고 밝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검색엔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칼슨은 2011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간경화와 골수 이형성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골수 이형성 증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상으로 혈소판·백혈구 등의 혈액 세포가 줄어 면역기능 이상, 감염·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만성 백혈병으로 진행되는 질환이다.

칼슨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 항암 치료를 10차례 넘게 받았지만 간 기능이 더 나빠져 더 이상 치료를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간 치료가 더 급해진 것이다. 그는 미국 장기이식 네트워크(UNOS)에 뇌사자 간 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기약이 없었다. 언제 뇌사자 간이식을 받게 될지 말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러갔다. 항암 치료마저 중단해 상태가 갈수록 나빠졌다.

칼슨에게 남은 방법은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 간 이식’. 하지만 미국의 간이식센터에서는 “골수 이형성 증후군 때문에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수술을 꺼려했다. 간이 견디지 못해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 암 때문에 간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칼슨이 다니던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생체 간 이식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칼슨은 서울아산병원 간 이식팀이 5000건이 넘는 세계 최다 생체 간 이식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간이식 1년 생존율이 97%로 미국(89%)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확인한 뒤 한국행을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스탠포드병원 측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환자를 의뢰했다. 이후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칼슨의 진료기록과 검사영상을 검토했다. 송 교수는 “쉽지 않은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의 마지막 희망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칼슨은 지난해 11월 중순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그를 맞은 간 이식팀은 혈액내과와 긴밀한 협의를 하며 치료 계획을 세웠다. 환자가 고위험의 복잡한 수술과 긴 수술 후 회복과정에서 합병증 없이 무사히 잘 회복 버텨낼 수 있도록 검사 결과를 검토하고 여러차례 회의를 거쳐 치료계획을 세웠다.

한달여 만인 12월 19일 칼슨의 간 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기증자는 부인 헤이디 칼슨(47)이었다. 이식팀은 부인에게 복부에 10cm 정도만 절개한 뒤 아내의 간 62%를 잘라냈다. 기증을 받는 칼슨 쪽은 훨씬 더 어려웠다. 그는 오래 간경화를 앓아 복막염이 자주 생겼고, 장기 곳곳이 달라붙는 유착이 심했다. 보통 생체 간 이식은 10시간 안팎이면 끝나지만 칼슨은 18시간 걸렸다. 긴 수술 동안 혈소판 16팩, 혈액 20팩 등 엄청난 양의 수혈이 진행됐다.

해외 의료인에 생체간이식 수술법 전수하는 이승규 교수   (서울=연합뉴스) 2대1 생체간이식을 세계 첫 개발한 이승규 교수(오른쪽)가 해외 의료진에게 생체간이식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2대1 생체간이식은 두 명의 간 기증자로부터 받은 간의 일부를 각각 떼어내 한 사람의 환자에게 옮겨 붙이는 방식으로, 2000년 3월 서울아산병원이 세계 최초로 수술에 성공했다. 2018.8.8 [서울아산병원 제공]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해외 의료인에 생체간이식 수술법 전수하는 이승규 교수 (서울=연합뉴스) 2대1 생체간이식을 세계 첫 개발한 이승규 교수(오른쪽)가 해외 의료진에게 생체간이식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2대1 생체간이식은 두 명의 간 기증자로부터 받은 간의 일부를 각각 떼어내 한 사람의 환자에게 옮겨 붙이는 방식으로, 2000년 3월 서울아산병원이 세계 최초로 수술에 성공했다. 2018.8.8 [서울아산병원 제공]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골수 기능이 떨어져있는 칼슨은 수술 뒤에도 다른 이식 환자들에 비해 간 기능이 회복이 더뎠다. 위험한 순간이 종종 찾아와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그는 13살, 11살 아이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잘 버텨냈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치료 끝에 고비를 잘 넘겼고, 2월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 무사히 회복했다. 간 기능이 회복된 칼슨은 미국으로 돌아가 항암 치료를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칼슨은 “한국에서 입원 생활을 했던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의료진 모두가 나의 건강을 위해 많이 신경써준 덕분에 불편함 없이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일상을 즐기고 싶다. 나와 가족들이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집도를 맡은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ㆍ간담도외과 교수는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엔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많이 차 있었고,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 많이 쇠약해진 상태여서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환자와 가족들이 본인 병에 대한 이해가 깊고 워낙 치료 의지가 강했다. 치료과정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중환자간호팀 등 간이식팀 의료진 전원이 환자 상태를 매일 공유하고 고민하며 함께 노력했고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조차도 저희 의료진을 믿고 치료 과정에 잘 따라준 환자와 그 가족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이식팀을 이끄는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뇌사자 간이식은 장기기증이 활발한 미국이 발전했지만, 생체간이식은 우리나라 치료 실적이 월등해 해외 의학자들도 의술을 배우러 오고 있다. 미국 10대 병원으로 손꼽히는 스탠포드 대학병원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인정해주고 환자를 믿고 맡겼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앞으로도 생체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전 세계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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