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개편 극비작업 급피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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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가 1급기밀중의 1급기밀인 환율제도의 개편작업이 극비리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의 어느날, 정부 제2청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과천시내 모처에는 재무부·한은·산은·외환은·수은·일부시은등에서 각각 차출된 7명의 젊고 유능한 「환율전문가」들이 처음 모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내용은 물론 어떤 일때문에 차출되어 어디서 당분간 근무하게 되는지등의 일체의 내용을 가족들에게조차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비로소 실무작업에 착수, 요즘 피로도 잊고 매일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외부와의 연락이 일체 차단된 것은 물론이다.
○…환율제도의 개편 작업에 정부가 손을 댔다는 것은, 정확히 지난 80년 2월27일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현행복수통화바스킷제와의 결별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차피 자본자유화일정의 추진과 함께 외환시장 개설에도 대비해나가지 않을 수 없고, 또 현행 복수통화바스킷제를 놓고 미국이 계속 「환율조작국」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이나마 외환시장의 개설을 전제로 하는 환율결정방식으로의 이행을 고려하게된 것이다.
워낙 철저한 밀실작업인 관계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알수는 없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환율제도개편의 주된 방향은 요컨대 환율결정방식의 점진적인 「자율화」라고 할 수 있다.
곧 한은이 통화바스킷 공식에 의해 매일매일 결정, 고시하는 현행 환율제도를 버리고 은행들이 스스로 환율을 결정케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5∼7개 은행들로 구성된 환율 협의기구가 아침에 전날에 거래된 외환시세를 토대로 산출한 환율을 그날 하룻동안의 중심환율(가칭)로 삼아 여기에 적당한 마진을 붙여 외환을 사고 판다는 것이다.
매매마진은 각 은행들이 자신들의 외환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마진의 상·하한선(스프레드)을 공동으로 두든가 아니면 이것마저도 은행자율에 맡길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한관계자는 『시행초기의 혼란을 우려, 일정한 스프레드를 두었다가 장기적으로는이를 없애 자율화하는 방향을 택하게 될 것같다』고 조심스런 전망을 했다.
○…제도개편에 따른 문제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이 시장여건이다. 시장이 있어야 물건이 매매되게 마련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외환을 팔고 살 시장자체가 빈약하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은행간 외환시장이 인위적으로 개설된다 해도 거래물량이 보잘것 없어 자칫가격(외환시세)이 왜곡될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다른 문제점은 시장기능에 맡길 경우 환율불안이 커진다는 점이다. 즉 주식시세처럼 환율의 등락이 심해 은행간 거래는 물론 대고객(기업 및 개인)거래에 커다란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복수통화바스킷에 의한 환율결정방식은 지난 80년초, 당시 정인용 재무부 국제금융차관보(현 아시아개발은행부총재)가 팀장이 되어 역시 철저한 밀실작업끝에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같은 시스팀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것으로 당시 lMF(국제통화기금)의 내노라하는 전문가들도 처음 설명을 듣더니 『과연 이 제도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고 한다.
이후 환율은 이 시스팀의 「비밀공식」에 집어넣어저 결정되어 왔고, 그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항상 「열손가락 이내」였으며, 이들은 처음 환율결정 업무를 맡을 때 좀 과장하여 표현한다면 「무덤까지도」 비밀을 가지고 간다는 「선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이 제도를 두고「환율조작」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SDR(특별인출권)바스킷과 5개국 주요통화바스킷에 의해 산출된 환율에다 우리정부가 정책변수「α」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어느나라도 환율을 「조작」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바로 우리나라를 「조작국」이라고 비난하는 미국이 대표적인 조작국이라고 할수 있다.「G5」니 「G7」이니 해서 선진국들끼리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총재들이 모여 앉아 환율을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 우리의 「조작」과는 비교가 안되는 「거대한 조작」인 셈이다.
그같은 예는 최근의 달러강세를 막기 위해 미정부가 일본이나 서독측에 달러매각을 요구하는 것이라든가, 일본은 자국통화의 지나친 절하를 저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시장개입을 통해 달러를 처분하는 행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환율협상문제는 제도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간 파워게임에 좌우된다는 견해가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지난 4월3일 대만이 스프레드마저 없애고 환율을 완전자유화했지만 미국측이 대만중앙은행의 찾은 시장개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사례는 환율결정에 있어서의 「힘의 논리」를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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