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경협 떠맡겠다”…통화 직후 트럼프는 “서두르지 않겠다” 다섯 번 반복

중앙일보

입력 2019.02.21 00:04

지면보기

종합 08면

문재인(左), 도널드 트럼프(右)

문재인(左), 도널드 트럼프(右)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서두르지 않겠다(in no rush)”는 말을 다섯 번 반복했다.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지만 다섯 번이나 되풀이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발언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된 우주정책명령 서명식에서 나왔다.

비핵화 당근책 놓고 결 다른 한·미
트럼프 “시간표 없다” 또 속도조절
청와대 “트럼프 통화서 긍정 반응”

이에 앞서 한국시간 19일 오후 10시부터 35분간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언급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이같이 전하며,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고도 말했다고 알렸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된 문 대통령’과 ‘기다린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교차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에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의 말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거론함에 따라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이어서 준비할 플랜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는 대북제재 완화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19일 “(2차 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이 나올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 궁극적으로는 비핵화다”라면서 “제재들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내겐 촌각을 다투는 시간표(pressing time schedule)는 없다”며 속도조절론도 반복했다. 남북 경협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자임할 준비를 마쳤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는 속도 차가 난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결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과 입장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을 직접 대면하고 협상을 이끌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협상이 임박한 상황에서 기대감을 부풀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에 문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이 같은 백악관의 고심을 염두에 두고 한국이 부담을 덜어줄 테니 북한의 통 큰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비핵화 상응조치인 제재 완화를 적극 고려해 달라는 요청으로 풀이된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미 양측의 핵심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협상의 기대감을 낮춰 부담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이를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손을 내민 셈”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미 양 정상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로 같다. 다른 것은 그 속도”라며 “상황 관리를 하면서 재선 때까지 비핵화 협상을 이끌고 싶어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힘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20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제재 완화를 요청하는 모양새였다면 어제(한·미 정상 간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서서 (문)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라며 “관점의 이동”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의 종류를 우리(한국)가 늘려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전수진·위문희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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