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정돼야 국정 안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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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 81년 5공화국 출범기에 군부주도세력들간에 널리 회자되던 말이 있다. 『정치는 홍보요, 통치는 인사다』라는 말이다. 이런 인식에서 홍보매체 장악을 위한 언론인 숙정·언론통폐합과 공직자의 향배·인사권 장악을 위한 공직자 숙정조치가 나왔다.
그들이 택한 수단의 극단성때문에 결국 나쁜 평가를 받고 말았으나 통치와 인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지적은 정곡을 찌른면이 있다.
적거나 크거나 조직을 잘 이끌어 가려면 능력있고 바른 생각을 가진사람을 모아들여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같으면 총리이하 각료와 비서진, 집권당의 간부들을 우선 잘 골라야한다. 그리고 이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설혹 최적의 인물이 아니더라도 상당기간 안정적인 뒷받침의 분위기가 있으면 보통수준은 가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나무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분위기면 도저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6공화국의 인사는 어떠한가. 과연 적재를 기용하고 있는가, 기용된 사람들은 안정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작년 2월19일의 조각은 총리이하 각료 3분의2를 교체했지만 핵심요직에 5공인물들이 그대로 남아 5공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직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있어 어느정도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일반국민 보기에도 미흡했고, 집권측으로서도 찜찜한 진용이었던 셈이다.
국회의원선거 후 여소야대정국 전개와 5공청산을 요구하는 거센 분위기에서 5공의 체취를 간직한 내각이 설 땅은 점점 좁아졌다.
그래서 9개월반만인 작년 12월5일 또다시 전면개각이 단행됐다. 지금은 5공때의 각료는 고사하고 6공 조각당시의 각료마저도 3명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도 전면개각이후 반년 남짓새에 개각·당직개편설이 꼬리를 잇고있다.
최근에만도 불과 며칠새에 개각·개편설이 계속 터져나와 대통령이 발설자에게 경고를 하는등 두번이나 직접 진화에 나서야만 했다.
대통령의 직접진화로 가까스로 개편설이 가라앉긴 했지만 과연 그 약효가 얼마나 갈는지 그 누구도 자신이 없어 보인다. 물론 필요하면 총리건, 장관이건, 여당간부건 바뀔 수 있고 바뀌는게 당연하다.
스스로 책임질만한 잘못이 있을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불똥이 대통령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적당한 수준에서 개각·개편은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번 임시국회에서처럼 야당의 각료해임 공세를 피하기위해 야당에 어떤 언질을 주었다면 이행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각·개편이 너무 정치수단화돼 항다반사로 인식되면 정부·여당조직에 안정감이 없어져 해야할 일을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관료조직은 일본·서구의 의원내각제 국가와는 다르다. 관료조직의 독자성이 확립되지 못했다. 장관의 역할과 기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렇게 장관의존적 조직체계에서는 장관의 위치가 흔들리면 전조직이 함께 흔들리게된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불안상황에선 장관자신 일 추진의욕이 떨어질뿐더러 영이 안서 일을 하려해도 잘 되지 않는다.
격동의 지난 2년동안 국무총리가 4명이나 바뀌었다. 집권당 대표위원도 4명째다. 내무장관은 2년반새에 7명이 교체됐다.
그것도 모자라 계속 경질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뛰어난들 어떻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6공화국의 인사는 인물의 선정에서나, 일할 분위기 조성에서나 지금까지는 일단 수준이하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은 그렇다치고 문제는 앞으로다. 가장 중요한건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다. 물론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가용 인물의 풀도 넉넉지 않은데다 탐나는 인물들은 발을 들이려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정도는 하기에 달렸다. 들어온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 저절로 인물들이 모여들 것이고, 망신을 당하는 풍토면 오던 사람들도 발을 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자리에 대한 안정감을 주는게 사람 고르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통령임기가 5년이면 특별히 흠이 없는 한 총리나 각료들이 대통령임기의 반정도는 안정되게 일할 수 있어야하고, 우수한 사람이면 진퇴를 함께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래야 장관도 중장기계획을 가지고 소신을 펼수 있지 않겠는가.
불가피하게 책임지울 일이 있든가, 도저히 그 자리에 맞지 않아 교체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국정의 공백이 없도록 소문나기 전에 신속하게 조처하는게 낫다. 책임질만한 일은 있으되 바꾸지 않을 때에는 내부적으로라도 그런 취지를 분명히 해 국정의 표류를 막아야 한다.
인사의 안정은 국정안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전제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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