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1.08인구재앙막자] 봉사로 제2 인생…내 손 필요한 곳 아직 많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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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접수하시게요?"

서울 성동구 마장동 노인종합복지관 상담실. 자원봉사자 임진규(63.사진)씨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방문객들을 맞는다. 10여 평 남짓 상담실은 임씨가 제2의 인생을 펼치는 곳이다. 그가 이 자리를 지킨 것은 올해로 6년째다. 2000년 9월 복지관 개관 준비 때부터 함께 한 최장수 자원봉사자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행정부원장을 지낸 임씨는 1999년 은퇴했다. 병원 행정을 총괄하느라 바쁘게 살았던지라 갑자기 닥친 출퇴근 없는 일상이 막막하기만 했다.

"30여 년 일하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니 충격이 컸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 년이 지나니 한계가 오더군요." 하루를 넘기는 게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부인이 자원봉사 얘기를 꺼냈다. '젊을 때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남은 삶은 남을 위해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77년에 큰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그때 어려운 사람을 돕기로 결심했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일할 기회가 온 거죠."

적당한 봉사처를 찾던 임씨는 노인 관련 일을 하면서 행정 경험도 살릴 수 있는 이곳을 골랐다. 한결 익숙한 병원 봉사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피했다.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봐서다.

임씨는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요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출근한다. 오후 4시 퇴근하기 전까지 오전엔 식권 배부, 접수 안내를 하고 오후엔 800여 명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는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이렇게 쌓인 봉사 시간이 어느덧 7000시간이 넘는다. 단순한 일인 것 같지만 회원 수 1만800여 명, 하루 방문자 1000명인 곳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첫째도 둘째도 겸손이 비결이죠. 예전 직장엔 골치 아픈 일도 많았지만 여기는 마음만 비우면 즐거운걸요." 책상과 사무실은 작아지고 직위도 없지만 마음은 한결 넓어졌다. 규칙적으로 일하며 즐겁게 사니 건강관리도 저절로 된단다. "학벌이나 예전 지위를 생각해봉사활동 하지 못하는 동료를 보면 안타깝죠. 아직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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