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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몰리는 「시베리아의 파리」|시베리아횡단 1만km <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노보시비르스크를 출발, 이르쿠츠크로 가기위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야 했다.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을 출발, 시베리아의 대지를 향해 첫걸음을 시작했을 때 기대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같은 것도 많이 반감된 상태여서 로시야열차를 또다시 만났을 땐 『아이쿠! 또 이틀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오면서 기차속에서 보낸 시간이 50시간 가까이 되다 보니 이제는 기차만 바라보아도 지겨운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처음에는 기차 속에서 열심히 사진도 찍고 멍하니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며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시간이지 수십 시간씩을 별 변화없는 경관을 바라보면서 별도 없고, 달도 없는 어둠속으로 달릴 때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것뿐 별다른 특별한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밤기차 여행은 눈과 함께 우거진 자작나무숲, 때때로 수줍은듯 얼굴을 내밀다가 사라지곤 하는 달과 함께여서 조금은 덜 지루했다.

<유적 많은 고도>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유적으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곳은 제정러시아 체제에 반대했던 「12월 단원」(데카브리스트) 들이 유형와 그들의 꿈을 묻었던 곳이며 수백년을 그대로 서있는 특유의 검은 전나무 김들로 고풍스런 분위기가 한껏 솟아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4월28일 저녁 8시쯤 취재진은 눈발이 날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춘원 이광수가 소설 『유정』에서 최석과 정임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전개시킨 배경이 되었던 도시이며 이르쿠츠크파 한인공산당으로 귀에 익숙한 도시인 이곳엔 약 7백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다.
현재 도시의 인구는 약50만명. 이중 학생수가 전체인구의 6분의1정도인 8만∼9만명이니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 곳이다.
원주민은 부랴트족 이나금광 개발과 몽고·중국과의 중개무역, 카자흐들의 겨울숙영등을 거치면서 전체주민의, 80%이상을 러시아인이 점하게 되었다.
1803년부터 시베리아총독부가 자리잡았던 탓인지 도시의 중앙공원엔 탐험가 「예르마크」와 시베리아 총독으로 이름높던 「무라비요프」가 조각된 높은 탑이 솟아 있는등 역사유물도 많이 남아있다.
이르쿠츠크는 무엇보다 「성스런 바다」라 불리는 바이칼호수로 유명한 곳이다.
전세계 담수용량의 20%가 담겨져 있다는 이 호수는 말그대로 호수라기 보다는 거대한 바다였다.
춘원이 상해를 떠나 노국으로 가면서 그토록 보고싶다고 했던 바이칼호는 이르쿠츠크시내에서 한시간 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으로부터 안가라강이 흘러나온다.

<소설 「유정」무대>
남북간 길이는 6백36km로 서울∼부산간 거리보다 훨씬 길고, 전체면적은 남한의 3분의l정도인 3만3천평방km이나 수심은 세계에서 가장깊은 1천7백42m다.
취재진을 안내한 「블라소프」기자는 바이칼호를 제대로 관광하려면 기차와 배,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해 1주일은 걸린다고 했다.
몽고인은 예부터 바이칼을「거대한 바다」라는 뜻으로「바이쿨」이라 불러왔다.
실제로 바이칼에는 바다처럼 파고 5m가 넘는 큰 파도도 있어 원주민들은 바이칼의 파고를 잠재우기 위해 호수를 건널 때엔 가지고 있는 동전을 호수에 던지곤 했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와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바이칼을 관광할 때 동전을 던져 넣어 바이칼호 밑바닥에는 아마도 상당한 양의 동전이 깔려 있을 것이라 했다.
주민들의 바이칼에 쏟는 관심도 대단해 주변의 공해업소와 공장들은 모두 이전되거나 특별한 관리아래 들어가 있다.
주민들이 이와갈이 바이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호수가 이르쿠츠크 지역의 식수원이자 산소의 주요 공급원일 뿐 아니라 「성바이칼」이라는 단어에서도 알수 있듯 이지역 주민들의 점진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소련 사람들, 특히 이로크츠크 주민들은 비이칼호수에서 갈라져 나온 안가라강의 입구에는 신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천상의 계단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바이칼과 연관된 신화나 전설등도 수없이 많아 이것만 모아도 몇권의 책이 될 정도다.
이르쿠츠크는 원래 목재업을 비롯한 기계제작및 운모가공등이 유명한 도시였으나 지금은 안가라강 좌안에만 공장지대가 밀집되어 있고 우안에는 과학아카데미지부를 비롯한 대학 연구소등이 밀집되어 있어 산업도시라고는 할 수 없다.

<40~50만명 찾아>
오히려 이곳은 몽고로 가는 자동차도로, 중국으로 가는 교통노선, 안가라강, 바이칼호수등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교통관광도시라고 할수 있다.
바이칼의 수심이 워낙 깊어 한겨울에도 심호의 수온은 온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아 소련의 다른 지역보다 겨울에는 따뜻라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일조량도 연 2천2백시간 이상이어서 휴양지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바이칼에는 일찍부터 외국관광객들이 몰려왔고 지금도 연평균 4O만∼50만명의 외래인들이 바이칼을 찾는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에도 이곳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와 일장기를 앞세우고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를 관광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서구의 대학생들이 학술여행을 온 모습도 보였다.
데카브리스트박물관에서 만난 스위스학생들은 『러시아역사를 공부하다 「트레자코프스키」에게 관심을 갖게 돼 그가 유형왔던 이곳을 찾았다』고했다.
데카브리스트박물관은 「트레자코프스키」가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
이르쿠츠크에 머무르는 동안 취재진은 소련 최고의 명절이라는 노동절을 맞았다.
휴일이 많은 소련이지만 이날은 온 시가가 철시하고 동마다 자신들이 만든 플래카드와 꽃수레등을 앞세우고 시청앞에서 벌어지는 시가행진에 참여한다고 했다.
행진이 끝난 다음 시민들은 깃발·풍선등을 손에 들고 거리를 몰려다녔으며 젊은이들은 기타등을 치면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등 흥겨운 모습이었다.
훈장을 주렁주렁 단채 한껏 위엄을 찾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기타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가라강의 낙조와 어울려 기막힌 그림을 연출하는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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