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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트럼프와 김정은 담판, 뻔뻔함의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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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트럼프는 능청맞다.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2월 27~28일)을 예고했다. “바라건대 첫 정상회담처럼 우리는 두 번째 정상회담도 잘할 것이다.” 그런 기세는 트럼프답다. 하지만 1차 싱가포르 회담은 잘못했다.

북한의 교묘한 협상술 작동 중 #하노이 상징성을 낚아채려 해 #영변은 뻔뻔한 먹튀의 기억 #ICBM 스몰 딜, 치명적 후유증 #한국은 핵 없는 비애 맛봐야 #발등의 불에서 돌파구 찾을 것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판정은 선명하다. “(1차 회담은)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의 ‘윈-윈(win-win)’ 아닌 ‘김정은 윈’이다.”( 4일 매체 ‘살롱’ 인터뷰) 올브라이트는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과 회담했다. 그런 판정패 시각은 압도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질러버린다. 그의 트윗은 그런 도구다. “김 위원장과 만나 평화의 대의(cause)를 진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의(大義)’의 언어 색감은 호기심이다. 관객들의 감흥은 별로다. 1차 때와 딴판이다. 2차 하노이 회담을 놓고 비관론이 강하다. 롬니(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상원의원은 냉소적이다. “희망은 크지만 특별한 기대는 없다.”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대한 불신은 널리 퍼져 있다.

트럼프의 협상 수법은 좌절했다. 그의 이미지는 ‘협상 달인’이다. 뉴욕의 부동산 시장에서 그의 솜씨는 능란하다. 하지만 김정은과의 실전에선 미숙했다. 북한 협상술의 바탕은 뻔뻔함이다. 그것은 외교 정글 속 경쟁력이다. 거기에 기습과 변칙, 지연술의 재간이 담겨 있다. 트럼프도 그런 기량을 갖췄다. 하지만 북한의 수완이 한 수 위로 작동했다.

북한의 미국 대표 다루기는 상투적이다. “상대방이 낙관과 환멸, 실망 사이를 오가게끔 협상 무대를 조작한다.”(척 다운스 지음 『북한의 협상전략』) 스티븐 비건 미국 특별대표(미 국무부 대북정책)는 2차 회담 실무 책임자다. 그의 비핵화 원칙고수는 인상적이다. 비건은 평양에서 북한의 그런 수법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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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미묘한 요소다. 북한의 하노이 고집은 노림수다. 하노이는 저항이다. 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의 수도. 외곽 박장성에 북한군 묘비들이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북한은 공군 조종사를 파견했다. 북한은 그런 상징적 기억들을 낚아채고 있다. 그것은 교묘한 ‘무대 설정(stage setting)’이다. 상징은 실질을 생산한다. 북한은 장소 선정에서 우위를 점했다.

미국은 다낭을 원했다. 그곳은 관광·산업도시다. 베트남의 경제발전 계기는 미국과 화해·수교다. 트럼프는 그런 전환의 역사성을 부각하려 한다. 그는 장밋빛 미래를 투사한다. “김정은 리더십 아래 북한은 대단한 경제 강국(economic powerhouse)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경제 로켓!” 하지만 북한의 우선 관심사는 다르다.

북한의 롤 모델은 파키스탄이다. 그것은 핵보유국으로 경제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경제 제재와 해제·지원을 경험했다. 북한은 언어를 쪼개고 이슈도 나눈다(살라미). 떼쓰고 우긴다(벼랑끝). 핵은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핵물질·핵탄두, 단·중·장거리 미사일, 핵의 동결· 폐기·신고·검증. 그 세계는 북한의 협상 체질과 어울린다. 완전한 핵 폐기는 오래 걸리고 힘들다.

미국은 수위를 하향조정했다. CVID(완전+검증 가능+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멀어졌다. 실질 목표는 스몰(small) 딜이다. 방식은 주고받기. 북한이 한두 사안을 처분한다. 미국은 보상을 준다. 예상하는 회담 의제는 영변 핵시설 폐기다.

영변은 불길한 징크스다. 북한은 그곳을 26년간 의제로 써먹었다. 영변의 냉각탑 폭파(2008년 6월)는 ‘먹튀’다. 그것은 뻔뻔함의 절정이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본토 안전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 대륙을 겨냥한다. 장거리 미사일을 먼저 없애는 것이다. 거론되는 상응조치는 인도적 지원 확대, 종전선언 논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이다.

그런 거래가 실제 진행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의 기존 핵무기와 중·단거리 미사일은 그대로 남는다. 핵물리학자 헤커 박사는 “북한의 핵무기 수는 최대 37개”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인에겐 끔찍한 위협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은 뻔뻔함으로 정리될 것이다.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경계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우쭐해지려는(flattered) 것.” 트럼프는 계산적이면서 충동적이다.

하노이 회담은 북한 비핵화의 기로다. 스몰 딜, 1차 회담 반복이 될지, 트럼프의 역전 카드가 나올지 미지수다. 하지만 포장술은 예측된다. 결과에 상관없다. 트럼프는 성공으로 규정할 것이다.

북한 핵은 한국인에게 치명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운전대 중재는 한계를 갖는다. 한국은 제3자로 밀려나 있다. 그것은 핵 없는 나라의 비애다. 설움을 맛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돌파구를 찾는다. 위기관리의 역설적 성향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