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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DJ 집권 시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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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역사의 심판을 받아라.” 그것은 ‘피고인 전두환’을 향한 시민들의 고함이다. 11일 광주지법 주변 모습이다. 그런 질타와 분노는 익숙한 장면이다. 31년간 반복된 풍광이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부터다. 그때 그의 나이는 57세(1988년 2월).

전두환 부부의 김대중 격찬 #“사람은 겪어봐야 진면목 안다” #‘5·18 광주’ 상징인 DJ는 #통합과 미래로 역사 연출 #전직 대통령 3명이 재판 받는 #문재인 시대와 격렬하게 대비

그는 그런 처지를 ‘전직 대통령 수난사’라고 했다. 부인 이순자 여사는 ‘편할 날이 없는 역경’이라고 표현했다. 이번엔 ‘골목 성명’은 없었다. 골목은 그의 연희동 자택 앞. 1995년 12월 김영삼 정권 때다. 그는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그의 표정은 결의를 드러냈다. 긴박감이 퍼졌다. 측근 4명이 바로 뒷줄에 섰다. 그중 안현태(전 경호실장)·허문도(전 통일원 장관) 두 사람은 세상을 떴다.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 기세는 사라졌다. 88세 노인은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광주로 가는 길이다. 부인(80)이 따라갔다. 자격은 신뢰관계인. 정신건강 보호자 격이다.

퇴임 후 첫 10년은 격리다. 백담사 유배(2년), 감옥(2년1개월) 생활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은 추징금 집행이다. ‘전두환 추징법’은 집요했다. 이순자의 회고는 비통을 담았다. “우리가 존경하고 모셨던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 그렇게 한 것에 절벽 앞 충격을 느꼈다. 검찰은 둘째 아들의 이혼한 전처의 집까지 들이닥쳤다.”

5공 출신 인사는 익명으로 전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생 의리를 중시했다. 자식·친척·측근들에 대한 마구잡이식 재산압류는 그의 수난 중 가장 심한 수모와 고통이었을 것이다.”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다. 거기엔 ‘수호지의 양산박’ 느낌이 풍긴다.

조롱받기는 수난의 형태다. ‘재산 29만원’은 혐오의 압축이다. 전두환의 광주 언행은 그런 감정 표출의 소재다. “이거 왜 이래”, 재판 중 졸음이 포착됐다. “광주 학살 주범의 뻔뻔함”이라는 경멸이 쏟아졌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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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사’에 반전(反轉) 부분이 있다. 1998년 7월 김대중(DJ) 정권 시절이다. DJ는 이전 국가원수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했다. 참석자는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직 대통령이다. 그들 사이는 악연과 곡절로 얽혀 있었다. 만찬 중간쯤 YS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두환이 서둘러 정리했다. 어색해진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박지원 의원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예전에 들려준 이야기다. “만찬 후 전 전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을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그는 1층 내부를 여기저기 살펴보고 감탄하더라.” 그 장면은 전두환의 넉살 좋은 활달함으로 기억된다.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정권 때 지어졌다.

DJ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직 대통령 모두가 만찬을 함께한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이다. 나는 국민들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과 국정 경험을 나누면서 국난 극복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김대중 자서전』)

전두환의 삶은 3김씨와 엮였다. 1979년 10·26으로 3김 시대가 개막됐다. 전두환은 3김의 권력의지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5·17 신군부 쿠데타다. DJ(구속·사형 언도)·YS(가택 연금)·JP(체포 연행)는 퇴출됐다. 세상이 바뀌었다. 3김씨는 각자 방식으로 응수했다. YS는 ‘역사 바로 세우기’다. 그것으로 전두환은 구속됐다. 사형, 무기징역을 거쳐 사면됐다. 추징금은 풀리지 않았다. 2015년 11월 YS는 서거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의 빈소를 찾았다.

김종필 전 총리(JP)는 언어로 응축했다. 그의 농담 섞인 말의 여운은 미묘했다. “미운 놈 먼저 죽는 걸 보는 게 말년의 즐거움이다.” 전두환은 JP를 부정축재자로 몰았다. 그 말은 억울함과 분노의 표시다.

DJ는 혹독하게 당했다. 하지만 화해와 미래로 전환했다. 전두환 부부는 “DJ 시절이 좋았고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강을 건너 봐야 수심을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이순자 회고록 『당신은 외롭지 않다』) DJ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대조적인 풍광이 충돌한다. 전두환 부부의 DJ 격찬, 광주 시민들의 전두환에 대한 분노다. 그 풍경들은 맞서고 어울리면서 소용돌이친다.

DJ의 역사 연출은 문재인 시대와 격렬하게 대비된다. 지금 생존한 전직 대통령은 4명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장기간 자택 요양 중이다. 나머지 세 명(전두환·이명박·박근혜)은 재판 중이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참상이다. 『전두환 회고록』 간행(2017년 4월)은 고난의 길이다. 그 책은 그를 다시 법정에 세웠다. 혐의는 ‘사자(死者)명예훼손’이다. 조비오 신부의 생전 증언은 5·18 헬기 사격이다. 회고록은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반박한다.

회고록 3권은 퇴임 후 이야기다. 부제는 ‘황야에 섰다’. 이순자 여사는 남편의 알츠하이머 증세를 거론한다. 5·18 단체들은 그 주장을 ‘추한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거친 들판은 전두환의 삶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