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독도와 서해 5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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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열흘 전 노무현 대통령은 계룡대에서 주요 지휘관들과 대화를 했다. 남북관계는 안전, 평화 그리고 통일의 순으로 추진하고 경제 분야를 우선으로 하여 문화, 그리고 정치로 협력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옳은 방향이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이를 크게 취급하지 않았다. 나 역시 원문을 직접 읽지 않았기 때문에 넘기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매우 위험한 말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것은 NLL과 관련된 언급이었다. 대통령은 "NLL에 대한 합리적 공존의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위태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위기 요인을 제거하자는 것, 압력을 낮추자는 것, 신뢰를 높이자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NLL이 분쟁의 요인이 되니 그 분쟁의 요인을 없애자는 것이다.

지난달 말 남북 철도 개통을 위한 군사회담에서 북한 측은 "철도 개통을 위한 군사보장책을 세우려면 서해상 충돌 방지 문제와 같은 군사적 긴장 문제를 우선 풀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위기의 요인을 제거하자는 대통령의 언급과 맥을 같이한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NLL을 인정하지 않고 줄기차게 도발해 왔다. 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NLL은 손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휴전선을 다시 긋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북한 도발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 백령도.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다. 지도를 보라. 서해 5도는 NLL이 무너짐과 동시에 북한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아래가 영종도 인천공항이다. 서울의 관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해군의 전력은 이곳에 집중 포진돼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이번 군사회담에서 북쪽의 제안을 수용해 "NLL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 정부가 왜 우리의 영해를 타협의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그 이후 NLL을 양보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지금보다 남쪽으로 조금만 양보하면 북한이 만족할 것" "긴 회랑을 만들어 통행을 보장하자"는 등의 구체안들이 정부관리들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사이에 긴장 완화라는 명목으로 우리 바다를 북한에 떼 주려는 시도가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이 정권은 북한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니까 '북핵이 방어용'이라고 대통령이 변명해 주고, 미사일 실험도 '인공위성 실험'이라고 청와대 참모가 대변해 준다. 이제는 우리의 영해인 NLL까지 북의 입장을 대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은 NLL이 긴장 원인이라고 하는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보다 우리에게 더 큰 긴장요인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북한에 긴장을 만들지 말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런 말은 한마디 못하고 그들 주장만 수용한다. 이러니까 친북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동해에서는 거꾸로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NLL에 대해서는 이렇게 관대한 대통령이 독도와 관련해 "일본 도발에 맞설 방어적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일본의 위협으로 한.일 전쟁이 코앞에 닥친 것처럼 비장하다. 솔직히 우리 국민 중 몇 사람이 일본의 무력위협을 걱정하고 있는가. 현실적 위협이 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독도를 내세워 이를 과장하고 실제 위협이 있는 북한은 무조건 감싼다. 왜 대통령의 눈에는 북한의 위협은 보이지 않고 일본의 위협만 보이는 것일까.

대통령의 독도에 대한 관점이 서해 5도와는 연관이 없을까. 독도로 서해 5도를 감추려는 것은 아닐까. 독도를 강조함으로써 영토에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 부각시키면서 슬쩍 NLL을 양보하려는 것은 아닐까. 식민지 역사의 쓰라린 교훈으로 말미암아 일본을 이기자는 데 반대할 국민이 없다. 이를 이용해 위기가 없는 독도는 위기를 만들고, 위기가 팽팽한 NLL은 양보해도 괜찮다는 착각을 만드는가.

NLL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 국경선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영토를 보전할 책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의무를 훼손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여당 의원들조차 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NLL이 훼손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 대통령이 헌법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