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정책 잘못으로 360억 혈세 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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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질의 경청하는 유시민 복지부 장관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현황보고 상임위원회에서 유시민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있다.(서울=뉴시스)

보건복지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 사업을 추진했다가 무산되는 바람에 360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됐다.

복지부는 26일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 운영중인 삼성SDS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서울고법의 조정결정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조정결정은 복지부가 삼성SDS측에 올해부터 2011년까지 6년간 매년 60억원씩, 360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의약품종합정보시스템은 1999년 4월 의약품 납품비리를 근절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축하기 시작했다. 김모임 전 복지부장관 때 의약품유통 개혁방안을 내놓았고, 차흥봉 전 장관 시절 구체적인 기본계획을 세웠다.

이 시스템은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제약사에게 약품대금을 지급하는 '직불제'를 도입, 의약품 거래가격을 공개하기 위한 것이다. 병의원을 거치지 않고 건보공단이 직접 약품대금을 지불하면 실제 약값이 전산망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시스템 도입으로 병.의원이 제약회사로부터 약품 납품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 사업은 참여업체가 시스템 구축비용을 부담하고 향후 10년간 의약품 거래대금의 0.5%를 이용료로 받아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2000년3월 경쟁입찰에서 삼성SDS와 한국통신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2001년7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그러나 병원과 약국, 제약회사가 참여하지 않아 시스템은 초반부터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여기에 병원협회.의사협회의 입법청원을 받아들인 의원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직불제 규정마저 2002년12월 폐지됐다.

삼성SDS는 "직불제 폐지로 사업성이 없다"며 복지부에서 시스템을 인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SDS는 2002년 6월 복지부를 상대로 57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458억원을 배상하라는 승소판결을 받았다. 복지부는 이에 불복, 항소했으나 지난 20일 항소심 재판부의 조정결정을 받아들였다. 결국 이해집단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제도를 추진하다 아까운 세금만 날리게 된 셈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철저히 준비하고 치밀하게 추진했어야 함에도 정책실패로 혈세를 낭비하게 된 것에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복지부는 정책실패의 전 과정을 점검, 책임소재를 규명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해당 관련자들을 문책할 방침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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