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업계는 지금…(29) 제당업|육가공·조미료에 설탕은 "뒷전"|제약사업에 까지 손뻗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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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당업이 결코 사양산업일수는 없습니다. 성장속도가 둔화되긴 했으나 다른나라에 비해 설탕소비수준은 낮고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소비가 늘어날 여지는 아직도 많습니다』제당업계를 찾으면 쉽게 들을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말대로 제당업이 사양산업이 아님을 인정한다해도 그렇다고 성장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짧은 산업사속에 사실 제당업처럼 변전을 겪은 산업도 드물다. 제당업은 지난53년 제일제당을 시작으로 이후 57년까지 삼양사·대한제당이 나란히 설립, 40년 가까이 여타기업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은채 3사 독과점체제를 유지해왔다.

<독과점품목 지정>
60년대만해도 제당업을 거느린 업체는 국내의 굴지 기업으로 통했다. 당시 떠들썩했던 「3분파동」도 뒤집어 말하면 설탕이라는 품목과 제당업 자체가 몇몇 안되는 주요산업의 하나였음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현재의 삼성그룹도 모직과 제당업을 토대로 오늘날의 축성을 이룩했다고 할 수있다.
그러던 것이 급속한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른 여타 산업의 대두로 상대적인 위축을 겪으면서 지금은 저성장 업종으로 내려 앉은 것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현재 제당업이 안고 있는 고민도 여타업계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가운데서도 두드러진 것은 설탕소비의 증가둔화현상으로 80년을 고비로 성장감속이 뚜렷해지면서 특히 지난 85년 설탕소비가 제자리 걸음을 한후 소비량 증가는 한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국내 설탕생산량은 60만1천t으로 87년(57만8천t)에 비해 4%밖에 늘지 않았다.
현재 국내1인당 설탕소비량은 연간 15·9kg으로 미국(30·2kg)·EC(48·2kg)등 선진국과 이웃 일본(22·1kg) 은 물론 전세계 평균소비량(21·2kg)에도 크게 못미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같이 설탕소비가 이처럼 적은 것은 동양인들의 식생활패턴이 서양처럼 음식을 달게 먹지않는 탓도 있지만 국민들의 고칼로리 식품에 대한 기피현상도 큰 몫을 하고있다.
『현재 소비량 정도로는 아직도 충분치 않다』고 업계는 애써 주장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번자리잡은 인식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 매출확대에 장벽이 되고 있다.
설탕소비증가세 둔화 외에 최근들어 두드러진 국제원당가격의 상승도 제당 업계의 경영악화를 재촉하고 있다.
지난4∼5년간 비교적 안정세를 보여오던 국제원당 가격은 작년초부터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 지난해 1월 t당 2백62달러하던 것이 최근에는 3백29달러로 치솟았다. 국제원당값이 이처럼 뛰고 있는 것은 지난해 미국의 가뭄피해로 작황이 나빴던데다 공산권을 포함한 개도국의 수입급증으로 세계시장의 수급불균형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 특히 중국은그동안 한해 평균 1백50만t정도를 수입해왔는데 올해부터 3백만t으로 수입을 배가시켜 국제원당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제당업에 원당이 차지하는 원가비중은 63%로 높고 지난 3월 현재만도 1년전에 비해 원당값이 24%상승, 15·1%의 인상요인을 안고 있다. 지난해엔 원화절상으로 이를 일부나마 커버할수 있었으나 올해는 절상속도가 둔화돼 환율인하에 따른 국제 원당가격 상승 상쇄도 여의치 않다』고 박상춘대한제당협회전무는 말했다. 요컨대 원당값이 올랐으니 설탕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원당값 24%인상>
그러나 제당업계의 고민은 설탕값 인상이 쉽지않다는데 있다. 정부의 독과점품목 가격관리에 꼭 묶여있고, 물가불안이 가중되는 현시점에선 정부가 제당업계의 이러한 요구에 귀기울일 태도를 전혀보이고 있지 않기때문이다.
이런문제 말고도 제당업계로서는 시장개방의 가속화에 따라 머지않아 다가올 수입개방도 속앓이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4월 89∼91년 2백43개 품목의 농수산물 수입자유화 예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원당을 91년부터 수입자유화품목에 포함시켰다. 밀·옥수수등 대부분의 농수산물이 그렇듯이 원당도 실수요업체들만이 수입을 할수있었던 체제가 허물어지게 되고 일반소비는 해당되지 않는다 해도 제과·제빵등 대량소비업체가 직접 수입을 하겠다고 들고 나오면 기존업계 판도의 변화가 초래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난84년 한차례 피나는 시장쟁탈전을 벌인 이래 제당업계의 판매경쟁은 요즈음 냉각돼 있는 상태다. 주변여건이 워낙 어려워 외환이 내우의 여지를 눌러버린 셈이다.
제당업계의 연간 내수시장규모는 2천억∼2천5백억원 남짓, 이를 제일제당이 48∼49%, 삼양사 32∼33%, 대한제당이 19∼20%정도씩 점유, 오랜기간 공존체제를 지켜오고 있다. 시장개방은 그같은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제당업을 둘러싼 여건이 이처럼 어렵다고해서 제당업체들이 속수무책으로 팔장만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경영 다각화를 시도, 사료·제분·육가공·수산등에 손을 뻗쳐 제당에 대한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제일제당은 지난 59년, 63년 잇따라 제분·조미료업에 진출한 이후 사료·육가공·대두가공업에 차례로 사업영역을 넓혀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제약사업에도 참여, 유전공학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따라 제일제당의 전체 매출(88년 6천8백82억원)중 제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현저히 낮아졌다.
이와함께 삼양사도 사료·축산외에 화섬·면방등 섬유에 손을 뻗쳐 지난해엔 화섬부문매출(2천3백48억원)이 제당(8백34억원) 을 3배나 웃돌 정도로 주종업종이 바뀌었고 대한제당도 사료부문이 설탕부문을 매출액면에서 크게 능가하고 있다.

<가동율향상 시급>
제당3사가 설탕부문의 신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모두 짭짤한 순익을 낼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와같은 경영다각화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지금 국내 제당업계는 시설능력의 과잉으로 3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1백20만t(협회추정) 에 달하는 반면 실제생산은 수출물량을 포함해도 연간 90만3천t(88년)으로 가동률은 75%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도 설탕소비는 정체상태에 이른지 오래고 일본의 경우 최근까지 시설능력을 감축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신장여지가 남아있는 국내 제당업계로는 아직 일본의 전철을 밟을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설탕수요에는 한계가 있는만큼 원료구매기법의 발전과 수출을 통한 가동률의 향상으로 설탕부문에 적자요인을 줄이면서 경영다각화를 더욱 가속화해 나가야하는 것이 제당업계의 진로이자 제당업을 둘러싼 상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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