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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날짜도 안 정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간 비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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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미 정상회담] 디테일 협상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6일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 참석차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6일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 참석차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6일 평양행은 북·미 협상 국면에선 이례적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길 의제를 조율하는 극히 민감한 자리인데 미국 본토와 연락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은 호랑이굴로 들어간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돌아오는 일정을 확정하지 않는 ‘배수의 진’을 치고 북한에 들어갔다고 한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전 오산 미군기지에서 미군 군용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에 들어갔다.

“김정은, 핵시설 파괴 그 이상 약속” #미 군용기 타고 서해항로 평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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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북·미의 실무협상 장소로는 판문점과 평양이 동시에 거론됐다. 그러나 이번엔 북한이 홈그라운드인 평양을 제안했고, 미국이 협상 속도를 높이려 이를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한다. 비건 대표가 평양 실무협상에서 요구한 것은 ‘핵연료 시설 해체와 파괴 및 그 이상’으로 관측된다. 비건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북한의 플루토늄·우라늄 농축 시설의 해체와 파괴, 그 이상을 약속했다”고 알렸다. 미국은 비건의 연설 전문을 주한 미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국문으로도 즉각 배포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대북 대표의 발언을 한글로 번역해 배포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는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한에 보내는 약속 준수 요구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김혁철

김혁철

비건이 만난 파트너인 북한의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대사는 북·미 핵 협상에서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했던 인사다. 김혁철은 2015년 첫 해외 임지인 스페인에서 “우리는 핵보유국으로 미국과 협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혁철의 발언들은 북한 외교관들의 전형적인 대외 선전술에 따른 것이지만, 그렇다고 김혁철이 비건을 상대로 유연한 협상술을 발휘할 여지는 없다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평양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협상에서 김혁철이 임의로 주고받기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모든 게 갈린다는 분석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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