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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大音希聲<대음희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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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호 29면

한자세상 2/2

한자세상 2/2

대상무형(大象無形).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는 뜻이다. 『도덕경(道德經)』 41장에 나온다. 이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롯데 경영의 화두(話頭)로 던졌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말 경영 복귀 후 가진 첫 사장단 회의에서 신 회장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 변화는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한하다”며 “기존의 틀과 형태를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룹 총수가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며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자”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앞으로 롯데그룹의 변신 폭이 매우 클 것으로 짐작된다. 급변하는 미래에도 살아 남으려면 그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대상무형이 나오는 『도덕경』 41장은 음미할 부분이 적지 않다.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지며, 큰 음악은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현실에 존재하는 사각형의 모서리가 우주적으로 팽창하면 있을 수 없고, 큰 그릇은 오히려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큰 음악은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고 한다. 지극히 철학적인 말들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부수는 통쾌함마저 있다.

중국의 거친 사드(THAAD) 보복과 뇌물공여 혐의로 인한 옥고 등 안팎으로 고전한 신동빈 회장이 경영 일선에 돌아와 처음 주문한 것이 대상무형이었다면 필자는 말만 많고 성취는 없는 우리 정치권에 대음희성을 요구하고 싶다. 좋은 음악일수록 소리가 없다고 한다. 이는 업적이 크고 많을수록 오히려 일일이 헤아려 가늠하기 어려운 법이라는 풀이와 맥을 같이 한다. 문제는 우리네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정치권은 여야가 앞다퉈 SNS 등을 앞세운 말의 공방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귀를 잡아당길 자극적 언사와 우리 눈을 끌어들일 퍼포먼스만 밤낮으로 연구할 뿐 서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개선시킬 방안에 대해선 깜깜이다. 민심(民心)을 잡으려는 정치인의 얄팍한 속내는 보이는데 민생(民生)을 챙기려는 정치가의 커다란 도량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개방(改革開放)으로 중국 발전의 토대를 이룬 덩샤오핑(鄧小平)은 부쟁론(不爭論)을 외쳤다. 공허한 말다툼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지’ ‘종합국력을 키우는 데 유리한지’ ‘민생을 개선하는 데 유리한지’ 등 이 ‘세 가지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하자고 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한다. 사탕발림 말의 성찬(盛饌)만 펴는 정치인을 추방하는 기해년(己亥年)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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