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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수술 받은 아들 “왜 천사 세 분이 와 계시죠”…두달 뒤 먼저 하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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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0년 여름 호서대 설립자이자 총장인 강석규 장로가 찾아왔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26) #<79> 진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스타트업 장려 호서대 총장 취임 #2001년 지미 카터 프로젝트 맡아 #100억 모금 전국 136채 주택 지어 #미국에 온 전화 “아들 진후 위독” #“슬퍼 말고 해비타트 몰두” 당부 #선교대상 상금 1500만원 기부해

“기독교 대학을 맡아 후진 양성에 진력하는 게 어떻겠소?”
서울 서초구와 충남 아산·천안·당진에 위치한 호서대는 1978년 개교 이래 교수·학생에게 창업을 장려·지원했다. 과학기술 경제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총장을 맡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01년 8월 6일 충남 아산에서 해비타트 &#39;화합의 마을` 건축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국제해비타트는 카터 부부와 함께 집중적으로 집을 짓는 &#39;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JCWP)&#39;를 한국에서 열어 아산을 비롯한 전국 6개 지역에서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136채를 건축했다. [중앙포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01년 8월 6일 충남 아산에서 해비타트 &#39;화합의 마을` 건축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국제해비타트는 카터 부부와 함께 집중적으로 집을 짓는 &#39;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JCWP)&#39;를 한국에서 열어 아산을 비롯한 전국 6개 지역에서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136채를 건축했다. [중앙포토]

해비타트 운동도 병행했다. 국제 해비타트는 매년 한 나라씩 골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함께 집을 짓는 ‘지미 카터 워크 프로젝트(JCWP)’를 진행한다. 2001년 개최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며 한국 JCWP가 호서대가 있는 아산과 군산·진주·경산·태백·파주 등 전국 여섯 곳에서 이뤄졌다. 준비 기간도 짧고 경험도 부족했지만 건축비 100억원 모금과 부지 확보, 입주자 선정, 자원봉사자 모집 등의 업무에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2001년 8월 5일 호서대 교육문화관에서 이 대학 사이클 팀이 부산-임진각 구간을 달려 모은 해비타트 후원금을 정근모 호서대 총장 겸 한국 해비타트 이사장(오른쪽)에게 전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8월 5일 호서대 교육문화관에서 이 대학 사이클 팀이 부산-임진각 구간을 달려 모은 해비타트 후원금을 정근모 호서대 총장 겸 한국 해비타트 이사장(오른쪽)에게 전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1월 총장실에서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의 며느리 전화였다. 신부전증을 앓던 아들 진후가 다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한 미국 버지니아 메디컬 센터에 도착했더니 수술을 마친 아들 모습이 의외로 평온했다. “해비타트 일로 바쁘실 텐데 왜 오셨어요?”라며 오히려 내 걱정을 했다. 담당 의사는 “수술이 잘 됐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 왜 이 방에 천사님 세 분이 와 계시죠?”라고 말했다. 놀라서 의사에게 재차 상태를 물었지만 “일주일 뒤면 퇴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믿고 귀국해 다시 학교와 JCWP 일에 매달렸다. 한 달 뒤 대학 입학식을 마치고 교수들과 다과를 나누는데 아내가 전화해 떨리는 목소리로 “진후 병세가 악화해 의식을 잃었다”고 전했다. 아들 곁으로 가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걱정하지 말고 해비타트에 몰두하라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의사 안내에 따라 생명연장 장치를 내 손으로 제거했다. 마지막 모습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해 3월 우리 곁을 떠난 진후가 남긴 말은 “아버지,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고 집 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지어주세요”였다.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겪는다. 그래도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며 고난과 좌절 속에서 삶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완쪽)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2 001년 8월 6일 충남 아산에서 해비타트 운동이 벌인 &#39;화합의 마을` 건축 현장에서 나란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완쪽)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2 001년 8월 6일 충남 아산에서 해비타트 운동이 벌인 &#39;화합의 마을` 건축 현장에서 나란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소식을 들은 국제 해비타트 이사회는 특별 모금으로 아산 ‘화합의 마을’에 진후(Harvey Chung) 기념주택을 짓고 헌정비를 세웠다. 카터 부부와 함께 간단한 제막식도 열었다. 그해 가을 JCWP를 마치고 결산을 하니 모금액이 1500만원 부족했다. 걱정하고 있는데 정진경 목사가 “올해 선교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연락했다. 아내는 상금 전액을 해비타트에 헌금했는데 놀랍게도 액수가 모금 부족액과 똑같은 1500만원이었다. 2001년 JCWP로 한국 6개 마을에 ‘사랑의 집’ 136채를 지었다. 입주가정·자원봉사자·후원자의 행복을 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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