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곤의동물병원25시] 한방 접목한 시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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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한 분 있다. 6년 선배인데 항상 새로운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뒤 수의 임상에 적용해 기존 수의학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부분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는 수의사로서 본받을 만한 분이다. 그 선배를 만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수의사라는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오랫동안 뵙지 못하다 지난 일요일 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근황을 여쭤보고 요즈음 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요즈음은 아니다. 3~4년 전부터 한방 수의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오고 계셨다. 한방 수의란 침과 뜸, 한약제 등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동물 치료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병원들은 양방의 철학과 치료 방법을 이용하는 곳이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은 양.한방 병원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나 수의학 분야에선 아직 한방 수의 분야는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그 선배는 기존의 동물병원 시스템에 한방 수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동물 진료를 하다 보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치료 방법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에 치석이 많이 끼어 있는 개들은 스케일링을 해줘야 한다. 사람과 달리 동물의 경우엔 전신 마취를 한 뒤 스케일링을 한다. 전신 마취를 하기 전에는 동물의 몸이 마취 상태를 아무 문제없이 이겨낼 수 있을지 혈액 검사와 흉부 방사선 사진을 찍어 판단하고 마취에 들어간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면 마취 후 스케일링을 한다. 하지만 노령견, 심장이나 기타 내부 장기에 이상이 있는 개의 경우엔 마취를 할 수 없다. 마취사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케일링도 할 수 없다. 스케일링 한번 안 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개들의 경우 치석이 문제가 되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그까짓 것'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경우 수의사는 고민에 빠진다. 치석 제거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할 수는 더욱 없다. 이런 경우 지금까지는 '할 수 없다'라는 결정을 했다. 마취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어지간히 강심장을 가진 수의사가 아니면 마취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그 선배는 전기 침을 이용한 방법으로 해결해 시술하고 있었다. 전혀 화학적인 마취 약물을 주사하지 않고 침과 미약한 전류를 이용해 개를 마취시키고 스케일링을 완벽하게 해냈다. 물론 마취 후 부작용도 전혀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그 같은 전기 침 마취법을 이용한다면 스케일링뿐 아니라 다른 몇 가지 수술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새로운 공부에 게을렀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오늘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선배 병원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박대곤 수 동물병원장 (pet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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