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오랫동안 뵙지 못하다 지난 일요일 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근황을 여쭤보고 요즈음 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요즈음은 아니다. 3~4년 전부터 한방 수의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오고 계셨다. 한방 수의란 침과 뜸, 한약제 등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동물 치료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병원들은 양방의 철학과 치료 방법을 이용하는 곳이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은 양.한방 병원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나 수의학 분야에선 아직 한방 수의 분야는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그 선배는 기존의 동물병원 시스템에 한방 수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동물 진료를 하다 보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치료 방법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에 치석이 많이 끼어 있는 개들은 스케일링을 해줘야 한다. 사람과 달리 동물의 경우엔 전신 마취를 한 뒤 스케일링을 한다. 전신 마취를 하기 전에는 동물의 몸이 마취 상태를 아무 문제없이 이겨낼 수 있을지 혈액 검사와 흉부 방사선 사진을 찍어 판단하고 마취에 들어간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면 마취 후 스케일링을 한다. 하지만 노령견, 심장이나 기타 내부 장기에 이상이 있는 개의 경우엔 마취를 할 수 없다. 마취사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케일링도 할 수 없다. 스케일링 한번 안 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개들의 경우 치석이 문제가 되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그까짓 것'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경우 수의사는 고민에 빠진다. 치석 제거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할 수는 더욱 없다. 이런 경우 지금까지는 '할 수 없다'라는 결정을 했다. 마취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어지간히 강심장을 가진 수의사가 아니면 마취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그 선배는 전기 침을 이용한 방법으로 해결해 시술하고 있었다. 전혀 화학적인 마취 약물을 주사하지 않고 침과 미약한 전류를 이용해 개를 마취시키고 스케일링을 완벽하게 해냈다. 물론 마취 후 부작용도 전혀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그 같은 전기 침 마취법을 이용한다면 스케일링뿐 아니라 다른 몇 가지 수술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새로운 공부에 게을렀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오늘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선배 병원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박대곤 수 동물병원장 (petclin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