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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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년째 맞는 광주의 비극 추도 모임 전야제에 5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가했지만 아무런 마찰 없이 행사는 질서정연하게 끝났다.
집시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모범을 광주시민들이 이룩했다는 점에서 가슴 흐뭇하며 화염병과 각목·최루탄을 증오하는 반 폭력의 공감대가 이토록 확산되었음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의대 감사 이후 전대협이 비폭력 평화집회를 선언한지 10여일째, 반 폭력의 공감대가 사회적 일체감을 이뤄 가는 이때, 폭력투쟁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나선 학생단체가 있어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학련이라는 단체의 발족 식을 가진 몇몇 학생그룹은 전대협의 비폭력 선언을「비 타협투쟁을 망각한 기회주의적 행동」이라 규정짓고 개정 집시법의 집회신고규정을「타도해야할 독재 정권에 구걸하는 행위」라고 단정하면서 화염병·돌·각목·쇠파이프를 비타협 투쟁의 무기라고 선언했다.
비록 5백명 남짓의 소수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대학 연동 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이처럼 과격하고 무분별한 생각이 어떻게 대학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스스로 「반제·반 파쇼 투쟁」을 위한 폭력 혁명조직임을 내걸고 화염병을 혁명의 무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과연 학생단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지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형태의 학생운동이든 그것은 사회적 공감대와 국민적 동의의 가능성을 전제로 출발하고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4·19의거와 6월 민주항쟁이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의 학생운동사에 길이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반 폭력의 사회적 공감대에 침을 뱉으며 평화적 시위, 파괴방지법이 여야 일치로 합의를 보고있는 이 시대적 요청을 등진 채 어느 국가, 어느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향한 투쟁을 벌이려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년전 학생운동이 구본 전역을 휩쓸 무렵, 동경대 안전강당이 점거농성 학생들의 방화로 불탔다. 빗발치는 여론 속에서 동경대생 6백여명이 구속 기소되고 그 해 동경대는 신입생을 뽑지 않은 채 전체 학생을 1년 유급 시키는 강경책을 내렸다. 그 후 일본의 학생운동은 급격히 퇴조했지만 극소수의 과격파는 결국 적군파로 변신, 공산 게릴라가 되었다가 결국 세계의 지탄 속에 미아처럼 전락했다.
과격 학생세력의 자기도취가 어떤 결말을 보게 되는지를 말해주는 이 비극적 선례를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학생운동은 자중자애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다수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명분이 그 투쟁방식에서 폭력형태를 취할 때 어떤 여론, 어떤 지지도 그들 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사에 의한 응징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통일염원, 5공 청산, 학원민주화라는 지난 1년간의 학생운동 구호가 아무리 설득력을 지녔다한들 학생이 스승의 머리를 삭발하고 총장실이 농성 점거장이 되면서 스승과 제자가 몸싸움을 벌이며 끝내는 동의대 방화·참사사태로까지 번지게되자 이젠 모두「폭력은 그만!」이라는 마지막 합의에 이른 것이다.
건실한 이상과 참신한 지성을 사회를 향해 한껏 뿜어주는 비폭력의 대학정신, 이것이 사회를 향기롭게 만드는 학생운동의 길임을 거듭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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