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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빼곤 모두 생산성 후퇴…투자·고용 부진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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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조업 역성장 

한국 경제 성장 엔진이던 주력 제조업이 2000년대 들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1일 서강대 혁신과경쟁연구센터 허정·박정수 연구팀이 2002년 이후 국내 10대 주력 산업의 부가가치·고용·노동생산성·수출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4개 항목 모두 최근 5년(2012~2017년) 사이에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동차·자동차부품·조선·기계·철강·화학·정유·휴대전화·디스플레이·반도체 등 10대 주력 산업 중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고 분석했다.

흔들리는 한국 경제 버팀목 #산업구조 고도화·혁신에 실패 #조선·자동차 하향세 두드러져 #기업들 한계상황 몰려 투자 꺼려 #“소득성장으론 경쟁력 회복 한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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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주력 산업 부가가치 증가율은 2007~2012년 연평균 6.2%에서 최근 5년 동안에는 -0.3%로 하락했다.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도 얻을 수 이익이 갈수록 줄었다는 의미다. 10대 주력 산업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같은 기간 부가가치 증가율은 3.9%에서 2.5%로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주력 산업의 하락 폭이 더 컸다.

산업별로 보면 최근 5년간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휴대전화(-15.3%)·자동차(-3.9%)·디스플레이(-1.3%) 업종에서조차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5%를 넘겨 건재한 모습을 보인 업종은 반도체(11.9%) 하나뿐이었다. 이마저도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어닝 쇼크’를 기록하는 등 향후 반도체 경기 둔화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건재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진단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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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산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이 역(逆)성장한 이유는 산업구조 고도화에 실패한 탓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조립 등에선 애플·화웨이 등에 경쟁 우위를 보인다. 하지만 운영체제(OS)·앱스토어·중앙처리장치(AP) 등 고부가가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은 밀린다. 삼성전자는 2015년 자체 개발한 OS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처음 생산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OS에 밀려 타이젠폰 개발을 잠정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동차 산업 환경도 비슷하다. 현대차는 완성차 조립엔 강점이 있지만, 자율주행·인공지능 등 미래 차 핵심 기술에선 격차(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70% 수준)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 역시 노르웨이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무인 전기 선박 건조 일감을 수주하고 있지만, 한국 조선사들은 시장 진입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2007~2012년에는 3.1%를 기록했지만 2012~2017년에는 -0.9%로 역성장했다. 노동자 1명을 더 고용했을 때 산업계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줄고 있다는 의미로 특히 최근 5년간 휴대전화(-10.2%)·자동차(-6.4%)·조선(-5.2%) 업종에서 역성장세가 뚜렷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모든 산업에서 이 수치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시간당 노동자 임금이 생산 효율성 향상 속도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고용 동향에서 나타난 기업 투자 부진과 고용 감소는 결국 부가가치·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진 영향이 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업이 돈(자본)과 사람(노동)을 더 투입해도 손에 쥐는 이익은 줄어드니 설비 투자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서강대 연구팀은 주력 산업 침체 속도가 빨라진 핵심적 이유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외 수요 감소, 중국 추격에 따른 시장 잠식을 꼽았다.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국내 수요 진작만으로는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마트 기술’은 짧은 기간에 학습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신기술 개발에 뒤처질 경우 갑작스럽게 주력 산업이 붕괴한 다른 국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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