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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부 펀드, 조양호 향해 레드카드 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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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조양호. [연합뉴스]

조양호. [연합뉴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사모펀드(PEF)를 운용하는 KCGI의 강성부 대표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한진그룹 신뢰회복 5년 계획’ 공개 #“회사평판 실추시킨 자 임원 금지” #사실상 조양호 일가 퇴진 요구 #한진칼·한진 2대 주주인 사모펀드 #3대 주주 국민연금과 손잡나 관심

KCGI는 21일 ‘한진그룹의 신뢰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이란 제목의 제안서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서 KCGI는 “회사에 대해 범죄행위를 저지르거나 회사의 평판을 실추시킨 자의 임원 취임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본지 1월 11일자 B2면>

강성부 펀드는 투자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해 지분 가치를 올리는 ‘행동주의 펀드’다. 최근 한진칼(지분율 10.81%)과 한진(8.03%)의 2대 주주로 올라서며 한진그룹을 정조준한 상태다.

KCGI는 “한진칼과 한진의 대주주와 경영진이 전향적인 자세로 응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들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3월 해당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 일가와 표 대결을 예고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대한항공(29.62%)과 진에어(60%)·칼호텔네트워크(100%)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조 회장은 본인(17.7%)을 포함한 특수 관계자의 한진칼 보유 지분(28.7%)을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 중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강성부 펀드와 조 회장의 대결 구도에선 국민연금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3대 주주(지분율 7.34%)다. 국민연금은 지난 1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방안을 논의했다. 국민연금은 조만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최경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전문위에서 결정한 사안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하면 최종 확정된다”며 “가급적 설 연휴 이전에 기금운용위원회를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성부 대표

강성부 대표

KCGI는 한진그룹을 겨냥해 “신용등급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유가 상승, 통화가치 하락 같은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2009년 파산한 일본항공(JAL)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우선 KCGI가 추천한 사외이사 2명, 현 경영진이 추천한 사내이사 1명, 외부 전문가 3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하자고 했다.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선임하는 기구로 임원추천위원회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임추위에는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도 담았다. 호텔부문 등 적자 사업의 매각이나 구조조정도 주문했다. 칼호텔네트워크와 LA윌셔그랜드호텔, 와이키키리조트, 서울 송현동 호텔 부지 투자  등 사업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한진그룹 직원들에겐 우호적인 손길을 내밀었다. KCGI는 “그룹 내 일반 직원들로 이뤄진 상설 협의체를 조직하고 한진인 자존감 회복 프로그램 등 실질적 소통방안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오는 3월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유리한 명분을 선점하고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KCGI는 이런 의사를 조 회장 일가와 그룹 경영진에게 전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이달 초 본지 기자와 만나 “회사 쪽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며 “회사 입장에선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겠냐”고 말했다. KCGI는 ‘밸류 한진(valuehanjin.com)’이란 별도의 홈페이지도 열었다. 지난해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을 겨냥한 공격에 나섰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한진그룹은 “현 단계에선 KCGI의 요구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겉으로는 조용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3월 주총에서 벌어질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등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다만 총수 일가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고려해 공식적인 대응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조현숙·이에스더·정용환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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