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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관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요즈음 연극공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관객, 특히 중년여성관객이 많아 4월 공연을 끝내고 5월 연장공연중인 『여자의 역할』에 출연하는 동안 체중이 3㎏이나 줄었다.
전에는 먹는것 조심하고 매일 체중을 달아보고 난리를 쳐도 줄지 않더니 이모님이 지어주신 보약에 같이 공연하는 백성희선생님, 박정자씨, 또 분장실의 이쁜이 정은이가 챙겨주는 샤크오일·비타민·꽃가루에 초컬릿·아이스크림·케이크 등을 마구 먹어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
정말 천만다행이긴한데 체력이 달려 공연이 끝나면 분장실의자에 주저앉아 『아유 기운없어, 나 장기공연 싫어』하게 된다.
처음 배역을 맡았을때는 출연시간이 제일 길고, 대사많고, 동작많고, 사건많은 배역을 줘서 연출자 김효경씨가 미남으로 보였는데 두달을 공연하게되니 『아유, 연출에서 진작 과감하게 커트 좀해주지』하고 투덜거리게 된다·
게다가 내가 맡은 작품이 관객의 반응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쪽이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여성관객이어서 반응좋고 호흡이 맞아 잘 넘어가는데 주말에 점잖은 중년남자관객이 올 경우엔 반응이 확 줄어 힘이 배로 든다.
심할때는 쥐죽은듯이 조용할때도 있어서 끝난후 『나 커튼콜 안 나갈래』『나 커튼콜할때 절대 웃지 않을래』하기도 하고 기획을 맡은 최불암씨에게 『입구에 남자관객 사절이라고 써붙일수 없어요』하기도 한다.
하긴 남자흉 신나게 보는 작품이니 남자관객이 반응을 내보이긴 어렵겠지만 그게 어디 내가 흉본건가.
「다리오·포」라는 이탈리아 남자작가가 쓴거지….
『매회 매진이고, 사흘전에 예약해야되고, 지방공연 신청이 쇄도하고, 해외공연도 갈거고…』하면서 남편에게 자랑을 해댔더니 『나도 가봐야 하는것 아냐?』한다. 얼른 『아직 멀었어요』하면서 행여 몸을 흔들어대고 다리를 슬쩍 내보이고 소리 꽥꽥 지르는 것을 보고 정 떨어질까봐 겁이 슬그머니 난다.
내게 가장 무서운 관객은 무반응인 남자 관객도 아니고, 연극이 좋으니 안좋으니 하는 전문가도 아니고, 내가 대사 잊어버릴까봐 조마조마하다는 내남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에게 보여 주기에는 이번 내 배역이 너무 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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