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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盧 때 北에 준 돈, 홍준표·유시민 말 모두 근거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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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3일 ‘고칠레오’에서 대북 퍼주기론을 팩트체크했다.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3일 ‘고칠레오’에서 대북 퍼주기론을 팩트체크했다.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3일 유튜브 방송 ‘고칠레오’에서 ‘대북 퍼주기론’을 팩트체크했다. “북핵 위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70억 달러 이상 북에 돈을 퍼줬기 때문”이라는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 발언의 진위를 검증해 본 것이다.

[팩트체크] #유시민 ‘고칠레오’ 출연한 천호선 #“교역 뺀 현금 지원은 40만 달러뿐” #계산 방식 따라 지원액 달라져 #통일부 자료도 그때그때 달라

유 이사장이 ‘팩트’로 주장한 내용은 통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통일부가 지난 대선이 한창이던 2017년 4월 20일 언론에 공개한 ‘정부별 대북 송금 및 현물제공 내용’ 자료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옥수수·밀가루 등 현물 29억1304만 달러, 현금으론 39억1393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방송에 함께 출연한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정부가 북한에 준 현금은 39억 달러 중 1만 분의 1(40만 달러)뿐”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의 99% 이상은 남북 교역에 쓰였다는 것이다. 이런 ‘고칠레오’의 팩트체크는 ‘팩트’일까? 이를 따져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결론부터 말하면 통일부·기획재정부 등 정부에도 전체 대북 지원액을 정확히 계산한 통계가 없다. 유 이사장은 통일부 자료를 근거로 들지만, 같은 통일부가 발표한 대북 지원액도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졌다. 통일부가 2010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나온 김대중·노무현 정부 현금 지원액은 27억 달러로 ‘고칠레오’에서 제시한 39억 달러보다 적다.

정부는 대북 지원액 통계 작성이 어려운 이유로 ‘대북 지원’이란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을 든다. 북한 땅에 철도·도로 등을 만들면 남한이 일정 기간 이용권은 갖지만, 소유권은 북한으로 넘어간다. 남한이 경협에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선 ‘상거래용’으로, 소유권 기준으로는 ‘대북 지원용’으로 볼 수도 있다.

또 대북 지원은 한국수출입은행이 관리하는 남북협력기금과 정부 예산(일반 회계), 국제구호단체를 통한 인도적 지원, 한국전력·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자금으로도 이뤄진다. 이 중 기준이 모호한 ‘대북 지원액’을 발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한 ‘대북 지원’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면 정부가 순수하게 북한에 제공한 현금은 ‘고칠레오’가 밝힌 40만 달러(4억4900만원)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 협력 기반 조성 자금도 대북 지원액으로 볼지 모호하다 보니 딱 잘라서 대북 지원액을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숫자를 계산하는 사람마다 다른 통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에 대한 현물·현금 지원이 ‘퍼주기’냐, 통일 준비 비용이냐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진보·보수 정부 모두 빌려준 차관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천 이사는 ‘고칠레오’에서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대북 차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차관을 갚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이 지난해 말 기준 남북협력기금으로 빌려준 차관은 9억3293만 달러(1조480억원)이지만, 연체 금액은 2억453만 달러(2300억원)에 이른다. 스웨덴 무역보험기관(EKN)의 2017년 연례보고서에 기록된 북한의 채무도 2016년 12월 현재 27억4100만 스웨덴 크로나(3400억원)에 달했다. 북한은 스웨덴 볼보 자동차 1000대 등을 외상으로 수입한 뒤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남한이 빌려준 차관이 북핵 개발에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한이 국가 채무는 갚지 않으면서 핵 개발에 투자한 것은 예산 집행 우선순위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힘들다며 돈을 빌려 간 친구가 이를 갚지도 않으면서 마약이나 총기류를 산 격이다.

한국은 북한이 빌린 채무를 갚지 않고 연체하더라도 국가 회계장부에서 손실(대손충당금)로 처리하지 않고 있다. 남북 경협의 경제 효과와 함께 정확한 대북 사업 손실 규모도 보고해야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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