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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직거래’ 승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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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호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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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탄 차량이 17일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탄 차량이 17일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갖고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 도착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면서다. 김 위원장이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거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북·미 양국은 후속 회담과 실무 접촉 등을 통해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의제, 특히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놓고 밀고 당기기에 나설 전망이다.

시진핑의 북한 노골적 후원에도 #친서 가진 김영철 직항 방미 수용 #2차회담서 ‘선 비핵화’ 완화 가능성 #밀고 당기기 치열한 수싸움 예고

북·미 간 공식 접촉은 지난해 11월 8일 예정됐던 고위급 회담이 연기된 지 70여 일 만이다. 당시 북한은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찾은 김 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길 원했지만 여의치 않자 고위급 회담 자체를 연기한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선 미군 유해 송환 등 나름 ‘성의’를 보였지만 대북 제재 해제 등이 뒤따르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 무산되면서 북한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던 중 김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트위터로 “나 역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양국 최고지도자의 직접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변수는 중국이었다. 지난 7~10일 김 위원장이 중국을 전격 방문하자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북·중 밀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와 강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5월 중국 다롄(大連)에서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자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 달라졌다”고 비판하며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바 있다.

이후 김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찾아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후견 역할에 부쩍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당시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중국의 후견을 약속하고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북한과의 직거래를 통해 비핵화 진전을 희망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같은 중국의 개입이 마뜩잖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김 위원장 방중 때도 “북한의 주장이 합리적이다. 후견을 약속한다”며 공개적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나섰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욱 강한 톤으로 북한을 두둔하자 김 위원장도 시 주석의 후원을 등에 업고 미국을 향한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판을 흔드는 대신 북한 대표단을 워싱턴DC로 맞이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위원장은 “미국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중국과도 상당 부분 사전 조율을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미 외교가에서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며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성과를 재선 레이스에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이나 폐기 등 비핵화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경우 미국도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기존 원칙을 다소 완화하며 호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미국 조야에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대북제재에 적용된 10여 개의 미 국내법 수정도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 만큼 2차 정상회담 후에도 ‘급진전-정체-협상 재개’ 과정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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