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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워싱턴행 007 작전…호텔 쓰레기장 쪽문으로 출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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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호 03면

지난 1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원안)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원안)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의 영접을 받으며 워싱턴DC에 도착했다. 북한 최고위 관리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로 직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위원장은 방미 기간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고위급 회담을 열 예정이다.

김 부위원장 방미 이모저모 #한국 대사관과 차로 5분거리 호텔 #8층 객실 30개 통째로 빌려 사용 #미 요원들, 동선 숨기려 철통 경호 #작년 추방된 김혁철 전 스페인 대사 #최강일 북미국장 대행과 함께 목격 #“친서 가져왔냐” 묻자 급히 사라져

미 국무부는 이날 김 부위원장 방문을 맞아 그의 동선을 숨기기 위해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남북관계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총책임자인 김 부위원장이 워싱턴DC에 도착한 이후에도 방문 사실조차 발표하지 않을 정도였다. 미국은 현관에 대기 중인 취재진을 피해 김 부위원장 일행이 ‘쓰레기 집하장’으로 연결된 쪽문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전날 베이징 공항에서 북한 경호요원들이 맑은 날씨임에도 우산을 받쳐 들고 김 부위원장의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려던 움직임과 유사했다.

미국은 숙소인 워싱턴DC 듀폰서클 호텔 8층을 통째로 빌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외교경호실(DSS) 요원들을 배치해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심지어 김 부위원장의 동선이 언급된 일부 기사와 트윗 내용이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뉴욕 방문 때 국빈급 경호를 한 데 이어 이번엔 스파이 라인의 북한 측 파트너를 위해 ‘007 작전’까지 벌인 셈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6시32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건 특별대표가 공항 내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가 김 부위원장 일행을 맞이한 뒤 VIP 귀빈실에서 잠시 환담했다. 이어 오후 7시30분쯤 출입이 통제된 제한구역에서 미리 대기하던 대형 승합차 다섯 대에 나눠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며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했다.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투숙한 듀폰서클 호텔 전경.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투숙한 듀폰서클 호텔 전경. [연합뉴스]

김 부위원장은 한 시간 뒤인 오후 8시30분쯤 호텔에 도착해서도 취재진이 대기하던 현관을 피해 DSS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쓰레기 집하장이 있는 쪽문을 통해 객실로 올라갔다. CNN 방송 기자가 멀찍이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에선 눈이 내리는 가운데 미국 측 경호원 4~5명이 우산을 받치고 에워싸며 김 부위원장을 경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숙소인 듀폰서클 호텔은 백악관에서 1.8㎞쯤 북쪽에 있는 4성급 비즈니스 호텔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과 승용차로 5분 거리로 가까운 곳이다.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머물렀던 메이플라워 호텔이나 지난해 5월 김 부위원장이 뉴욕에서 숙박한 밀레니엄 힐튼호텔과 비교할 때 같은 4성급이지만 규모는 작다. 대신 미 국무부는 김 부위원장 일행을 위해 호텔 8층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출입을 통제했다. 보안을 위해 스위트룸의 경우 500~1000달러, 일반 객실도 200달러인 호텔 객실 약 30개를 통째로 빌렸다는 뜻이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김 부위원장의 객실 확인을 위해 접근하자 미국 경호요원 세 명이 “어디를 가느냐. 투숙객인지 확인해야 하니 호텔 키를 보여 달라”더니 “8층에 다시 올라오면 호텔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돌려보내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19년 만에 워싱턴DC에 숙박하는 북한 최고위 인사인 만큼 미국 정부도 경호와 보안을 위해 최대한 신중을 기해 호텔을 선택한 것”이라며 “김 부위원장도 사전에 양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10시쯤엔 호텔 로비에서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대행과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가 취재진과 마주치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의 베테랑 외교관인 김 전 대사가 당초 알려진 박성일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대신 김 부위원장 대표단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김 전 대사는 에티오피아와 수단 대사를 거쳐 2014년 북한의 초대 스페인 대사를 지냈다. 하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잇따르자 스페인 정부에 의해 2017년 9월 추방됐다.

조용히 대화하던 두 사람은 기자가 다가가서 ‘회담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하느냐’ ‘내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대답을 피한 채 8층 숙소로 황급히 되돌아갔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18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 대표단 간 실무 회담이 시작돼 주말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양국 대표단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최 부상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을 떠나 스톡홀름에 도착했으며 비건 대표는 워싱턴DC 덜레스 공항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영접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비건 대표는 주말에 스톡홀름 협상 테이블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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