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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터뷰]”미세먼지 심한 날은 청량한 푸른색 양말을 신어 보세요”, 양말 덕후 구달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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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두 짝을 빨았는데 한 짝이 사라져버린 '짝없는 양말 미스터리'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사라진 한 짝을 찾기 위해 서랍장을 열었다. 양말이 몇 개 있는지 세어봤다.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정도. 색상은 죄다 검은색. 종류는 발목 아래로 내려가는 하계용과 발목 위로 올라오는 동계용 단 두 종류뿐이다.

100켤레가 넘는 양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들 들었다. 양말을 좋아하는 이유를 담은 『아무튼 양말』이라는 책도 냈단다. 발이 수십 개인 지네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양말이 필요할까? 이른바 '양발 덕후' 구달(33·본명 이명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예쁜 양말을 골라 신는 것만으로 평범한 일상이 단숨에 특별해질 수 있어요"

100켤레가 넘는 양말이 있다고요? 그렇게 많은 양말이 필요한가요?
얼마 전 세어보니 정확하게 127켤레더군요. 중학교 때 복장 규정이 엄했어요. 머리도 귀밑 1㎝를 유지해야 했고요. 그때 캐릭터 양말이 유행이었는데 학교 앞 팬시점에서 500원 정도에 팔았던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일요일 아침 8시면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디즈니 만화 동산을 시청할 정도로 만화 속 캐릭터들을 좋아했었어요. 호빵맨, 세서미 스트리트, 피카추, 스누피 등이 그려진 양말을 신는다는 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꼬박 입어야 하는 지긋지긋한 교복에 나만의 멋을 살짝 가미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죠. 캐릭터 양말이 인기를 끌자 학교에서는 빛의 속도로 양말 규정을 신설했어요. 무늬·색깔이 있거나 발목이 짧은 양말은 모두 금지되었죠. 캐릭터 양말도 당연히 금지되었고요. 고민 끝에 발등에만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다녔어요. 소심한 반항이라고 할까요? 그것 또한 얼마 가지 않아 선도부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생이 돼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사고 싶은 양말을 하나, 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캐릭터 양말에서 벗어나 다양한 패턴들을 가진 양말들도 샀죠. 취업 후에는 디자인에 더해 좋은 소재로 만든 양말을 사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모으다 보니 어느새 꽤 큰 양말 전용 서랍장 두 칸을 가득 채우게 되었네요. 하루를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양말을 골라 신는 건 가장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인 거 같아요.
양말 전용 서랍장. [사진 구달 작가]

양말 전용 서랍장. [사진 구달 작가]

양말 전용 서랍장이 있다고요?
우연히 4단 서랍장을 사게 되었는데 양말 전용 서랍장으로 쓰면 딱 맞겠더라고요. 서랍을 열고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 좋아하는 순서대로 양말을 차곡차곡 넣었어요. 한 칸에 가로 열두 줄, 세로 여섯 줄로 72켤레가 들어가는데 나름의 분류법도 있답니다. 출근하거나 약속이 있는 주말에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예쁜 양말이 모두 모여 있는 1번 칸에서, 약속 없이 홀로 동네를 어슬렁거릴 때는 2번 칸에서 양말을 꺼내 신어요. 그래서 1번 칸은 '브라만', 2번 칸은 '수드라' 양말로 부르고 있어요. 
구입할 양말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특이한 양말들이 많을 것 같은데 몇 개 소개를 부탁할까요?
나일론, 망사, 니트, 장식이 달렸거나 반짝이 등 남들이 잘 사지 않는 독특한 양말 위주로 사는 편이에요. 계절은 발목부터 온다고 생각해요. 봄에는 팬톤(PANTONE)이 선정한 그해 컬러의 양말, 여름에는 청량한 소재인 시스루 양말, 가을에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 겨울에는 따뜻한 울 소재의 양말 등도 사죠. 
키스 헤링의 그림이 그려진 엄마의 선물. 장진영 기자

키스 헤링의 그림이 그려진 엄마의 선물. 장진영 기자

조금 특별한 사연을 가진 양말도 많을 것 같은데요
내세우고 싶은 양말을 좀 설명해보자면, 엄마가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키스 해링의 그림이 그려진 양말이 있어요. 처음엔 넘쳐나는 양말을 보고 "지네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양말이 필요해!"라며 등짝 스매싱이 왔었는데 이젠 여행만 가시면 특이한 양말을 선물로 사다 주시더라고요. 새로 출간한 책에 그려진 양말 그림을 보고 친구가 떠준 양말도 있어요. 빤짝이가 박힌 파란색 펄 삭스도 가장 좋아하는 양말 중 하나에요. 과감한 파란색이 어떤 옷을 입든 잘 어울리거든요. 무릎까지 올라오는 캐시미어 양말도 있습니다. 캐시미어 소재로 된 니트도 없는데 양말로 사치를 부려봤어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양말도 있어요. 미국 브랜드를 어렵게 구했는데 알고 보니 '메이드인 코리아'였어요.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 셈이죠.
친구가 떠준 양말. 장진영 기자

친구가 떠준 양말. 장진영 기자

캐시미어 양말. 장진영 기자

캐시미어 양말. 장진영 기자

양말 사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겠어요
국산 브랜드의 경우 한 켤레 당 만원 전후가 대부분이에요. 수입 브랜드는 3~4만 원 정도 하는데 양말에만 포인트를 주니까 옷값 아껴 산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캐릭터 양말도 여전히 사는데 이건 한 켤레에 2000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죠. 가장 비싼 양말은 20만원 주고 산 구찌 양말이에요. 비싼 양말을 신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너무 아끼는 거라 6개월 동안 딱 한 번 신어봤어요
고가의 명품양말을 케이스에 넣어 보관한다. 장진영 기자

고가의 명품양말을 케이스에 넣어 보관한다. 장진영 기자

오늘의 양말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그날의 일정, 장소, 날씨 기분과 몸 상태 등을 고려해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청량감을 주는 푸른색 계열을 신고 비 예보가 있는 날은 건조가 빠른 나일론 소재 양말을 선택하는 식이죠. 깜박하고 종아리 제모를 잊은 날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니삭스를 신고 많이 걷는 날은 밑창이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선택합니다.  

구달 작가가 알려주는 양말 정리법!  

127켤레 양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있다면?
시스루 소재로 된 양말을 가장 좋아해요. 망사, 나일론, 레이스 등의 소재가 합쳐진 건데 양말 직조 기술이 집약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예민한 소재라 올이 나갈까 봐 손톱을 바짝 깎고 신어야 해요. 특별한 날에만 신는 거라 이번에 출간한 ‘아무튼 양말’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 신고 갔어요.  
가장 아끼는 시스루 양말. 장진영 기자

가장 아끼는 시스루 양말. 장진영 기자

싫어하는 양말도 있나요?
덧신 모양의 페이크 삭스를 싫어해요. 기능만 취하고 양말의 존재를 지운다고 할까요. 잘 벗겨지는 점도 마음에 안 들고요.
다른 사람의 양말도 눈여겨보게 되죠?
제니퍼 로페즈가 자신의 SNS에 150만 원짜리 양말을 신은 사진을 올렸어요. 복숭아뼈 근처에서 명품 로고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더군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나토 정상회담에 한쪽은 분홍색, 다른 한쪽은 하늘색 짝짝이 양말을 신었는데 각국 정상들이 트뤼도 총리를 둘러싸고 양말을 구경하던 모습도 잊히지 않아요.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강 다니엘이 저와 같은 양말을 신은 걸 발견했어요. 귀여운 곰이 그려진 양말인데 강 다니엘이 신은 그 날 바로 완판됐다고 하더군요. 묘한 동질감에 바로 강 다니엘에게 입덕했어요. 나 혼자만의 커플 양말이라고나 할까요.
강 다니엘도 신었던 양말. 장진영 기자

강 다니엘도 신었던 양말. 장진영 기자

그 많은 양말 세탁이나, 정리는 어떻게 하나요?
소재별로 모아서 전용 세제를 넣고 세탁해요. 울이나 레이스 같은 건 손빨래를 하고요. 나름 제가 정한 양말 정리의 세 가지 원칙은 1) 양말을 구기지 않는다. 2) 양말을 사각지대에 두지 않는다. 3) 양말 패턴과 색이 잘 보이도록 정리한다. 이렇게 하면 양말 서랍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요.
구달 작가가 제안하는 양말 스타일링. [사진 구달 작가]

구달 작가가 제안하는 양말 스타일링. [사진 구달 작가]

왜 양말을 신경 써서 신어야 할까요?
양말이 매너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로트먼이 쓴 알베르 카뮈의 전기『카뮈, 지상의 인간』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어머니가 결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묻자 카뮈는 하얀 양말 한 다스라고 답했다. 당시 카뮈는 흰 양말만 신고 다녔다' 인생 최고의 인륜대사를 앞두고 양말을 선택한 거죠. 당시 카뮈는 매우 곤궁한 처지였는데 단벌 양복에 흰 양말을 갖춰 신음으로써 말쑥하고 우아한 멋을 발산한 거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흔히 회색이나 검정 같은 무채색 계열의 양말을 선호하시는 많은 것 같은데요, 같은 색이라도 다른 소재에 도전해 보시고, 늘 입고 있는 옷에서 가장 좋아하는 색을 골라 같은 색 양말을 신어보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글·사진·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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