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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경찰 영결식 표정|"얼마나 뜨거웠노"에 눈시울 적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순국경찰관 6위의 유해가 부산에서 대전국립묘지에 옮겨져 안장된 7일 연도엔 온 국민의 애도의 물결이 넘쳤다.
유가족의 통곡과 동료경찰의 오열속에 각계 시민들은 다시는 이땅에 이같은 비극이 없기를 다짐하고 비는 한모습이었다.
부산시립의료원에서 오전6시30분 발인제를 가진 운구행렬은 부전동서면로터리에서 20분간 노제를 마친 뒤 고김명화수경이 근무했던 6중대와 고최동문경위와 박병환경사가 근무했던 시경 기동대90중대에 잠시 머무르며 고인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동료들의 배웅을 받았다.
90중대 현관앞 1백여m에 도열한 1백여명의 동료들은 고 최경위와 박경사의 운구차가 중대앞 마당을 나서자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며 흐느껴 장내가 눈물바다.
운구행렬인 미니버스 6대가 오전10시쯤 영결식장앞에 이르자 대기하고 있던 동료경찰 1명이 국화1백송이로 장식한 영정을, 다른 동료1명은 위패를 들고 유족대표 1명이 뒤따르는 가운데 대형태극기에 덮인 관이 영결식장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 정영환 경사(27)의 어머니 김우연씨(63)가 『영환아, 영환아, 얼마나 뜨거웠노. 얼마나 발버둥 쳤노』라고 울부짖어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순국경찰관중 유일한 기혼자인 고 최동문경위의 미망인 신양자씨(33)는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시종 고개를 떨군채 흐느꼈으나 외아들 봉규군(8)은 천진스럽게 장난을쳐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봉규군은 아버지의 장례식도 모르는 듯 운구차 안에서는 만화를 읽었고 영결식땐 어머니품에 안겨 잠을 자기도.
영결식직전인 오전10시36분쯤 부산시경 주악대의 연주와 함께 갑자기 찬송가가 울려 퍼지자 부산시불교연합회 사무국장 김찬묵씨(43)가 식장앞으로 뛰어나와 큰 목소리로 『여기가 교회인줄 아느냐』『순국경찰 5명이 불교신자』라며 한때 항의소동.
김씨의 항의로 주최측은 즉각 찬송가 연주를 중단하고 다시 조곡을 연주해 식장분위기를 되찾는 해프닝.
동료경찰대표로 조사를 한 90기동대소속 박종대 순경(28)이 『고혼들이여 하늘을 이불삼고 밤을 지새기가 얼마였으며 한끼 5백원짜리 찬밥을 삼키면서도 희망과 신념으로 살아오시다 이게 웬 청천벼락입니까.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라고 조사를 읽는 대목에서는 김차현 치안본부장을 비롯, 식장에 참석한 전 경찰이 오열.
유족대표로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한 고 정영환경사의 작은형 유환씨(31)는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화염병의 과격시위는 반대합니다』『살인을 반대합니다』『온몸으로 거부합니다』라고 절규.
동의대 5·3사건 대책위(위원장 이상욱·한의예본과1) 소속 학생5명도 영결식장에 참석해 고인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즉석에서 거둔 조의금 3만원을 접수처에 전달.
이군은 『우리들로 인해 비명에 간 고인들을 애도하기 위해 왔다』며 『수백명 규모의 조문단을 구성하려 했으나 유족·동료경찰관들에게 자극을 줄까봐 대표들만 오게 된 것』이라고 영결식장 뒷자리에 서서 영결식을 지켜봤다. 한편 이날 식장에는 부근 공장근로자·주민 등 3백여명이 성금 3백만원을 모아 전달했고, 한 국교생은 1천원을 들고 오기도.
참석인사중에는 이번 사태로 물러난 조종석전치안본부장과 이영창전치안본부장등 전직 경찰총수들이 눈에 띄기도.
또 정석모·홍세기 의원 등 경찰출신의원과 최형우민주당총무·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도 참석했으며 특히 조전치안본부장은 유족들 앞으로가 『죄송합니다』라고 사죄.
영결식장에는 6·25당시 숨진 전사자 부인들의 모임인 「전몰군경 미망인회」 회원 1백여명이 흰색 한복차림으로 「폭력을 추방합시다」라는 리번을 가슴에 달고 나와 눈길.
김녹윤 회장(59)은 『유족들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아 위로차왔다』며 『제발 인명을 해쳐 우리처럼 불행한 미망인이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전하기도.
고 모성태수경(22)의 영정앞에는, 모수경의 고향인 전남무안군 친구들의 모임인 「한울타리회}가 『모순경을 초대회장으로 임명한다』는 돌로 만든 기념패가 함께 놓였다.
모수경의 형 홍수씨(38·농업)는 『동생친구들이 같이 안장시켜달라고 부탁해 가져왔다』며 『동생이 지하에서나마 친구들의 회장패와 함께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먹.
부산을 떠난 순국경찰관 유해가 5시간만인 오후5시40분 대전국립묘지 안장식장으로 들어서면서 또 한번 통곡을 터뜨린 유족들은 하관이 시작되자 『떠나보내지 못하겠다』며 유해를 붙잡고 몸부림쳐 하관과 객토가 잠시 중단.
고 최경위의 부인 신양자씨는 하관 순간 땅을 치며 울부짖다 실신했으며 고 김명화수경(22)의 친형 희춘씨(24)는 묘지안으로 뛰어들어 『나를 묻어달라』고 몸부림.
○…이날 대전국립묘지엔 1만여대의 차량과 3만 인파가 몰렸는데 이는 경찰묘역이 85년11월13일 생긴 이래 처음이며 또 학장이 아니고 직접 안장된 것도 이번이 처음.
안장식장에는 노태우대통령을 비릇, 각계의 조화2백여개가 줄지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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