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통상 총 점검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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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선협상대상국(PFC)지정문제는 사실상 판가름났다. 오는 11, 12일 제3차 고위 통상 실무협상을 남겨놓고 있기는 하지만 한미양측이 모두 등을 돌려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측은 미국 측이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조건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미국 측에서도 PFC지정을 거의 기정사실로 몰아가고 있다.
예상한 대로이기는 하지만 막상 PFC지정이 불가피하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불쾌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우리는 PFC 지정을 피해보려고 대미구매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농산물을 비롯한 미국 관심품목의 시장개방확대, 상공부장관·부총리의 방미설득 등 하느라고 했으나 모두 무위로 끝나게 되었다.
심지어 미국정부 안에서조차 「칼라·힐스」무역대표부대표, 「로버트·모스배처」상무장관을 제외하고는 「마이클·보스킨」대통령경제자문 회의의장, 「제임스·베이커」국무장관, 「니컬러스·브래디」재무장관 등이 미국의 보복주의 노선에 대해 무역전쟁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기울고 있다. 미행정부는 의회 분위기나 업계의 압력을 내세워 종합 무역법의 슈퍼301조를 휘두르려 한다.
이런 상황에 이르러 우리는 미국과의 통상관계를 재점검하게 되고 미국의 선택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대미무역흑자를 낸 사실이 부담스러워 무역균형화 노력을 하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팀이 누누이 강조한대로 미국이 다그치고 있는 농산물의 추가개방이나 환율의 추가절상만큼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다.
미행정부가 받고 있는 업계와 의회의 압력이 심하기는 하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사정이 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성의는 국산화 정책과 외국인투자 제한의 완화 등 일괄타결 노력이 전부다.
미국은 우리의 고층이 어디서 연유하고 있는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의 상호이익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무역적자 등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그 때문에 미국의 경직된 통상 정책을 너그럽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위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희생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미 무역흑자는 우리 정부에서 축소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고있어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해도 미국 농산물만의 대한수출이 늘어나고 무역역조가 시정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해외의 전문가들도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칫하면 한미통상관계가 확대균형이 아닌 축소균형으로 기울지 모른다는 점을 양국은 우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부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슈퍼301조로 미국의 무역적자 해결이 가능할지 의문시 된다.
EC에서도 89년 보고서를 통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은 무역장벽을 너무 많이 쳐놓고 있다. 그런 미국이 과거 막강할 때 자유무역을 외치던 업계를 무마하기 위해 보복주의로 치닫게 되면 자유무역질서는 더욱 교란될게 분명하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PFC지정 이후의 대응책을 면밀히 세워야한다. 최소 1년, 최장 3년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정부는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대미통상 관계를 총 점검해야겠지만 들어줄 것 다 들어 주고 얻어맞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경제총체를 위한 합리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보며 관민이 합심 노력하는 통상마찰 관리 시스팀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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