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공필의 심모원려

초연결환경을 위한 사회적 신뢰의 토대 ‘블록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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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

작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연결환경에 비해 낙후된 레거시(legacy) 체제의 분화된 조직과 결정과정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데 중앙화된 제도나 기구, 그리고 정책이나 주요결정은 여전히 세분화되어 있으며 제약이 우선시된다. 공감대의 저변이 확대되지 못하고 환경에 타당하지 못한 대응방식으로 사회는 심각한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고도성장 패러다임에 익숙한 우리의 경우 조직과 결정과정의 낙후성은 심각하게 드러난다. 갭을 메꾸려니 법과 규제체계를 손봐야 하고 이는 누구도 나서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성이다. 특히 대륙법 전통의 국가의 경우 대체로 시행령과 특별법 등을 통해 불요불급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그늘이 점차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한마디로 근본적 차원의 혁신드라이브가 강조되는 이유다.

P2P, B2B, B2C, M2M 등 디지털 세상이 허용하는 다양한 연결을 기반으로 가치창출과 교환이 본격화되려면 법적 신뢰주체들의 중간 역할을 전제로만 작동되는 현 레거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산업간 영역이나 기관과 조직의 역할 및 책임소재 파악 자체가 점차 구분되기 어려운 통합환경에서 엄격한 영역기반의 법과 규제체계로 작동하는 체제를 자체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획기적인 대안의 가능성을 보이는 분산 장부의 하나인 블록체인이 핵심 기술로 부각되고 있다.

심모원려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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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은 장부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복제하여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의 핵심 메시지이다. 중요한 정보를 허가받은 소수가 독점하고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개방과 복제, 다수의 참여기반 검증 과정을 통해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는 신뢰의 토대로 전환시키는 획기적 발상이다. 물론 양쪽 모두 장단점은 존재한다. 폐쇄환경에서는 과도한 정보의 독점화와 해킹 위험이 커지는 반면 분산환경에서는 처리속도가 처지는 대신 보안 취약성을 관리할 수 있다. 그래도 IoT환경에서의 다양한 가치창출과 교환을 위해서는 통합적 관점에서 탈중앙화와 분산화를 통해 거래에 필요한 제반 확인과 인증 과정을 속히 처리해야 한다. 즉, 연결과 참여, 그리고 공감대 형성의 과정을 작동시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신뢰토대를 구축해 나가야 비로소 미래의 포용적 성장이 가능해진다.

다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모두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서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민초들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필수적이다. 특히 전환과정의 고통을 취약계층에게 전가하지 않으려면 혁신의 무늬만 내세우고 수동적인 편리함이나 독점적 시장 지위를 장기화하려는 자세를 배격해야 한다. 사실 인터넷 출현 이후 IT공룡들이 지배하는 현 생태계는 그 간의 변화를 가능케 했던 우리가 주인의 역할을 스스로 방기해왔음을 일깨워준다.

안타깝게도 ICO(암호화폐공개)사태나 탈중앙화 Dapp(분산어플리케이션)의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성급한 투기요소는 본질을 호도하고 일부 초기 생태계를 초토화시켰다. 새로운 신뢰 구축의 첫 발도 떼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거래소 주변의 혼란으로 미래 준비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주인 의식을 반영한 WEB 3.0과 디지털 지갑 및 탈중앙화 거래소 등 발전적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누구나 새롭게 다양한 연결을 통해 범사회적 차원의 가치창출에 나설 수 있도록 균형 잡힌 ‘개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주권을 회복시켜 다양한 방식으로 집중화와 독점의 위험을 관리하면서 굳건한 신뢰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는 게 초연결환경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