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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김일성 사망 때 방북조문…통일교 2인자 박보희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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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박보희. [뉴시스]

박보희. [뉴시스]

‘통일교 2인자’로도 불리었던 박보희(사진) 전 세계일보 사장이 1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육사 출신인 고인은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1970년대 통일교가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교세를 넓혀가던 시기에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연설을 영어로 통역하며 ‘문선명의 오른팔’이 됐다. 문 총재의 차남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박 전 사장은 자신의 딸 박훈숙과 영혼결혼식을 맺게 했다. 이후 딸은 성씨를 바꿔 문훈숙(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30년 충남 아산 출생인 고인은 육사 2기 생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보좌관을 비롯해 선화학원 이사장, 워싱턴타임스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3년간 세계일보 사장을 맡았다. 고인은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통일교 차원의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직접 방북해 조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북한에 조문을 가지 않았다. 통일교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과 이야기가 다 된 상태에서 갔는데, 보수적인 언론에서 ‘박보희씨 방북’을 하도 비판적으로 보도하니까 정부가 귀국을 막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고인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 때가 돼서야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통일교는 북한에 평화자동차를 설립하는 등 각별한 대북관계를 구축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때도 통일교 측의 대북 네트워크가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할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쪽과의 관계는 문 총재와 상의하라”는 유훈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통일교가 대북 관계에서 쌓아놓은 신뢰도가 있다. 고인은 그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지난해 건강이 악화돼 경기도 가평에 있는 통일교 산하의 청심국제병원에 줄곧 입원해 있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을 비롯해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 서울 용산 천복궁교회, 3010-2000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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