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고속철 새 驛 정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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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7개월간 지연됐던 경부고속철도 사업이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부산.울산지역 언론과의 합동인터뷰에서 "경부고속철도에 울산역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해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2010년 개통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盧대통령의 언급은 여러모로 적절하지 않다. 이미 정부의 실무자와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친 종합적 검토 끝에 역사의 위치와 숫자를 확정했고, 여기에 맞춰 공사가 진행돼온 상태이기 때문이다.

울산역을 추가로 만들려면 타당성 검토와 입지선정.시공 등에 6~7년이 걸리고 비용도 3천억원이 새로 들어간다고 한다. 민원으로 용지매입이 늦어져 공기가 1년만 지연될 경우 무려 2조5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발로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중단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기존노선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정부가 결정한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혼선을 빚은 것은 盧대통령이 지난 3월 노선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기존안대로 할 것을 시간만 허비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막대한 추가비용만 발생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대형 국책사업이 흔들리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역 추가 설치를 요구해온 김천.구미.오송.평택 등 다른 지역 주민들이 대통령의 울산역 신설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총선을 앞둔 특정지역 봐주기식으로 비춰질 경우 자칫 동시다발의 집단민원이 발생할까 염려된다. 만약 울산역사 신설이 타당성 검토에서 부적합한 것으로 나와 무산될 경우 이 지역에서 제기될 민원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대형 국책사업은 정부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직결돼 있다. 당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여론을 초월해 후손을 생각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국가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리더십은 언젠가는 국민이 인정하고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