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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분신 택시기사 사망…동료들 “정부 왜 나몰라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60대가 주축으로 이루어진 택시기사들은 또 어디로 가란 말인가. 우리 죽고 나면 대리기사들마저도 죽을 것이다.”

택시단체 비대위 국회 앞 집회 #카풀 운전자도 “가이드라인 필요”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비장함이 묻어나는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택시 4개 단체(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비상대책위는 전날 광화문에서 분신을 시도해 10일 사망한 택시기사 임모(65)씨의 유서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총 5분으로 구성됐다는 이 파일에는 개인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어 이날 공개는 2분 분량에 그쳤다. 녹음의 내용을 종이에 옮기면 총 A4용지 4장 분량이라고 한다. 임씨는 녹음 파일에서 “택시와 상생하자는 카카오톡이 지금에 와서는 콜비도 받아 챙기면서 간신히 밥 벌어 먹고사는 택시기사들마저도 죽이려고 한다”며 카카오 카풀에 대해서 정면 비판했다.

이날 오전에 만난 서울 택시기사 김모(58)씨는 “카카오 카풀은 반대하지만, 손님을 너무 잡기 힘들 때면 현실적으로 카카오택시 콜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택시기사 분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데 정부는 왜 나 몰라라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택시기사 이모씨는 “현재 고양시 택시들은 단체로 카카오 콜을 거부하고 있고 서울도 앱 삭제뿐 아니라 아예 탈퇴하자고 하고 있다”며 “대신 티맵 사용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카카오 비중이 6대4로 커서 카카오 콜을 안 받고는 손님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카풀 드라이버도 택시기사 분신 소식에 마음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카풀 기사로 2년째 활동 중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윤모(32)씨는 “밤늦게 퇴근할 때가 많은데 졸음운전도 막을 겸 카풀을 해왔는데 택시기사 분신했다는 뉴스가 나오니 마음이 많이 안 좋은 게 사실”이라며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집회에 모인 택시기사들은 ‘택시산업 말살하는 불법 카풀 척결하자’ ‘공유경제 미명하에 약탈경제 판을 친다’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박권수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자연합회장은 “100만 택시가족의 이름으로 결사 항전을 선언한다”며 “국회는 즉각 국토교통위원회를 소집하고 불법 카풀영업의 빌미가 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1항 1호를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집회가 끝난 후 택시 5대와 법인 택시 5대는 깜빡이와 라이트를 켜고 청와대 영빈관을 향해 행진했다.

지난 9일 오후 6시쯤 택시기사 임씨는 서울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서 분신했다. 불은 지나가던 시민들과 의경,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6분 만에 진화됐지만 온몸에 2도 화상과 기도에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10일 오전 5시 50분쯤 결국 사망했다.

박해리·심석용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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