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없어서 못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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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 가전제품이 품귀를 보이고 값도 오르는 추세다.
조금 마음에 드는 모델제품을 사려면 대리점을 몇 곳이나 돌아봐야 하고 종래와 달리 판매점 측이 고자세로 배짱부리면서 파는 것을 겪게된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 오름세다, 노사분규다 하여 불안이 적지 않은 소비자들에게는 더욱 언짢은 일이다.
일부 가전제품의 품귀현상 해소전망은 없는지, 유통가를 중심해 현황을 알아본다.

<실태>
한마디로 『없어서 못 판다』는 게 판매점들마다의 하소연이다.
TV과외로 특수가 일고있는 컬러TV·VTR는 물론 때 이른 더위와 지난해 대우전자 등의 분규파동에 영향을 받은 듯 일찍부터 수요가 늘고 있는 에어컨 등 냉방기, 5월초 특소세인상을 앞두고 역시 사두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오디오제품 등에 이르기까지 요즘 웬만한 큰 가전제품은 찾는 만큼 물건을 대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더구나 2백60ℓ이상의 대형냉장고나 6㎏내외의 대용량 세탁기등 대형·고급화추세에 따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일부 모델들의 경우에는 아예 구경하기조차 힘들다는 것.
금성사 서대문대리점의 경우 이같은 사태에 대비해 연초부터 비축물량확보에 신경을 썼음에도 이미 l6인치 이상의 TV나 완전자동세탁기, 슬림형 에어컨 등은 재고도 거의 바닥난 상태고 냉장고는 작년의 3분의1도 안 되는 10대정도를 갖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속 메이커 등에 주문을 하고 있으나 판매실적 등에 따라 비슷한 수요처끼리 「있는 물건」을 나눠 받는 식이어서 어차피 원활한 공급은 못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사정은 백화점 쪽도 마찬가지. 찾는 사람은 많으나 물량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 신세계의 경우 3월말께부터 TV와 VTR가 작년동기의 배를 넘는 하루 각각 1백대 가까이씩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나 역시 물량공급이 여의치 않아 관계자들이 매일공장에 지켜 서서 떼 오다시피 하고있다.
전에는 월 매입계획에 따라 앉아서 전화로 발주해오던 것이 물건을 잡느라 그야말로 몸으로 뛰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중 거래가격도 뛰어 오르고 있다.
통상 권장표시가격의 10∼l5%를 할인해 팔던 대리점들이 요즘 5%정도만을 할인해주고 있는가하면 l5∼40%씩을 할인, 공장출고가 이하의 덤핑가격에 살수 있던 세운상가에서도 이 달 들어 15%남짓 판매가격이 올라 일반 대리점가격과 거의 맞먹는 상태.
예컨대 37만원에 살수 있었던 삼성 보급형VTR가 40만원선, 50만원 수준이던 금성냉장고 4백20ℓ짜리가 52만원 선 등으로 2만∼4만원씩 올라 거래되고 있다.

<원인>
내수호황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내구재 구매열 뿐 아니라 노사분규·특소세인하 등을 의식해 부추겨지고 있는 심리적 가수요까지 겹친 때문이다.
올 들어 시장상황이 계속 수요측면에서 홍역을 치를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가전업계의 시각이다.
예컨대 연초 특소세 인하로 그 동안의 대기수요가 몰려 1,2월의 판매가 불티났고 다시 3,4월에는 TV과외특수 및 때 이른 더위로 인하여 기대이상의 수요가 집중됐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지난 1∼3월 중 컬러TV 22만 여대를 판매, 연간목표량(50만대)을 낙관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대우전자가 같은 기간 VTR를 전년동기의 4배가 넘는 6만 여대를 판매한 게 이의 반증.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의 4O%이상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금성사가 지난 17일을 전후로 파업에 돌입, 냉장고·에어컨·TV·VTR 등의 생산이 중단됐으니 그 반향은 보다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금성사측은 수요 철을 맞고있는 냉장고·에어컨 등의 공급차질을 부족한대로 유통재고로 대신하고 있으며 삼성·대우전자 등은 공장을 풀 가동, 정상출고하고 있다고 밝히고 일부 모델의 품귀가 전체 물량의 품귀로 와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 전망>
업계에서는 현재 분규중인 금성사가 정상조업에 들어갈 경우 5월을 넘어서면 어느 정도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분규가 장기화되고 더구나 내달로 예정된 대우전자의 임금협상이 생산차질로 이어질 경우에 대한 우려도 늦추지 않고 있다.
냉방기 등의 본격 성수철에 심리적 가수요 (말하자면 인플레심리)가 심화될 때의 상황이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점에서 업계 및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소비자들 스스로가 자제하고 냉정해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꼭 요즘 필요한 경우라면 대형대리점 등을 찾아 사야하겠지만 긴급을 요하지 않을 때는 되도록 이 시기를 피해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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