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교육 「입시위주」한계에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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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등교육이 중병을 앓고 있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고 조리 있게 표현할 줄 모르는 덩치 큰 어린이와 같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암기·시험위주의 현행 교육방법이 근본적인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김경자교사(35·여·정신여중·국어담당)는 『말하기 시간에 자기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이 50∼60%는 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말한다.
또 엄미영교사(30·여·삼선중·과학담당)도 『책에서 배운 것에서 한 단계 응용한 것을 물으면 아예 생각하려들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며 『마치 앵무새처럼 들은 것만 내뱉으려 한다』고 말했다.
15년 경력의 한 고2담임교사는 『한창 문학서적에 매력을 느껴야할 사춘기의 많은 학생들이 국민학생 수준의 가벼운 만화책에 매달려 있는 것을 자주 본다』고 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대다수 학부모들과 교육전문가들은 사지선다형문제가 절대적인 평소의 시험 및 고교연합고사와 대입학력고사를 위한 주입식·암기위주의 교육, 그리고 현장교육·살아있는 체험·실험실습이 배제된 교육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중학교 국어교육과정에 학기당 7시간정도 배정된 작문시간은 진도에 쫓겨 거의 활용하기 어려우며 월말·중간고사 등의 평균 문항 33개중 의도적으로 사지선다식을 피하도록 요구된 7개정도의 문제도 채점기준, 채점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사지선다식과 다를 바 없는 단답형 문제들로 채워진 상태라는 것.
실험이 우선돼야하는 과학교육의 경우 교과서 자체는 실험위주로 편성돼있으나 실험양이나 질을 충족하기에는 학급·학생수가 너무 많고 실습시설·전문교사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중학교 3학년의 주35시간 수업 중 생물·화학·지구과학·물리 등 4과목으로 짜여진 과학에 배정된 시간은 불과 4시간이라 준비과정과 실험·뒷정리에 적어도 2시간이상이 필요한 과학실험을 할 경우 오히려 수업에 방해가 되고 심지어 입학시험에 역효과를 준다는 생각도 학생들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정진곤교수(교육학)는 『지식의 암기력을 학교 교육의 주된 목표로 간주하고 학업능력을 단일척도에 의해 평가, 독창적인 사고능력을 소유한 학생을 열등하게 하는 현행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이런 풍토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제도상의 문제점 외에도 김교사는 과밀한 학급, 교사들의 부족과 과중한 잡무 등이 비정상교육의 원인이며 교사들에 대한 연수교육 확충 등을 통해 교육풍토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정보와 이론이 쏟아지는 과학분야의 교사연수가 평균 6년에 한번 정도 돌아온다』고 지적한 엄교사는 교과목의 불균형한 시간배당도 조정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정교수는 『사지선다식 평가방법은 평가의 객관성에만 가치를 두었을 뿐 교육의 다른 측면은 사장시키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어 교과서 범위에만 국한된 시험문제를 탈피해야 사고의 경직성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교육평가원의 김영길장학관 (평가연구실장)은『객관식 문제라도 심혈을 기울여 잘 만들면 경우에 따라서는 주관식시험보다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면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시험 전 문제가 유출될 것을 우려해 시험직전 전문가를 불러 문제를 급조, 문제의 질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평소 장기적 계획을 세워 심혈을 기울인 문제들을 전문기관에서 만든 후 그를 바탕으로 해 출제자들이 문제를 만드는 방법도 채택할 만하다』고 김장학관은 말한다.
또 각급 학교의 월말·중간고사 등에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암기·주입식 교육을 유도하는 현행 입시·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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