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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지문 “정권 입맛 맞으면 의인이고 안 맞으면 배신자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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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에선 내부고발자를 의인이라 칭하던 사람들이, 이번 정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자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있다. 내부 고발도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선한 것이 되고, 맞지 않으면 적폐가 되는 건가?”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한국 내부고발사(史)의 상징인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정부와 여권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종 담담한 목소리로 “신 전 사무관이 첫 폭로 영상에서 학원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그 동기가 불순하다며 몰아붙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 의원을 거쳐 현재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내부제보 실천운동 상임고문 등을 맡으며 공익 제보로 점철된 삶을 사는 그는 “내가 1992년 군 부재자 부정 투표를 처음 폭로했을 때도 ‘빨갱이’ ‘운동권 사주를 받은 놈’이라고 공격을 받았다. 공익 제보자를 배신자나 꼭두각시, 정신 이상자 취급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전형적인 공격 패턴”이라고 말했다.

1992년 3월 22일 이지문 당시 육군 중위가 서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부재자 공개기표와 중간검표 등 선거 부정을 폭로하는 모습. 양심선언 이후 군대에서는 영외자 투표제도가 도입되는 등 선거 부정이 사라졌다. [중앙포토]

1992년 3월 22일 이지문 당시 육군 중위가 서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부재자 공개기표와 중간검표 등 선거 부정을 폭로하는 모습. 양심선언 이후 군대에서는 영외자 투표제도가 도입되는 등 선거 부정이 사라졌다. [중앙포토]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신 전 사무관을 향해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응분의 책임이 뒤따를 것”(홍익표 수석대변인) “스타강사가 되기 위해 기재부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서 메가스터디에 들어간다는 사람”(박범계 의원) 등으로 비판했다. 기재부도 2일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이사장은 “공익 제보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제보가 사실이냐, 그리고 공익성이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동기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자꾸 제보의 동기나 의도를 앞세울수록 억측만 늘어나고 진실과 공익은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다. 또 “(여권 인사들이) 지금 당장 신 전 사무관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 사실이냐 아니냐는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정권은 100% 완전무결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에게 아쉬운 점도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폭로 창구로 택한 유튜브는 법적으로 공익 신고의 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공익 신고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긴 어렵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셈이다. 또 실무적으로도 조직과 맞붙기 위해선 정보와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뒀어야 했는데, 마음과 의지가 더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과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기도 한 그는 '후배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 전 사무관을 만나서 확보하고 있는 내용이 공익 제보로서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군 부재자 부정투표 양심선언이란

1992년 3월 실시된 제14대 총선 중 군대 내 부재자투표에서 상관이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를 찍으라고 병사들에게 강요하고 또 공개투표행위도 이뤄졌다는 사실을 이지문 중위가 기자회견으로 고발한 사건. 이를 계기로 그해 대통령 선거부터 부재자투표는 영외투표로 개선돼 군 내 부정선거는 사라졌다. 이 사건은 영화 ‘변호인’에서 양심선언 하는 윤중위와 웹툰 ‘송곳’에서 육사생도 시절 부당한 여당 지지 정신교육을 반대하는 주인공 모습으로 극화되기도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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