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 「당내 민주화」내연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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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총재 경선을 포함한 민정당의 당내 민주화 움직임이 또 좌절을 겪고 있다.
평민당이 서울시지부 위원 강경선을 한판 멋있게 치러내자 『선수를 뺏겼다』며 시샘하면서도 막상 자당의 부총재 경선에는 원래의 「조기실시」방침에 최근 「연기론」이 대두돼 대세를 지배하는 분위기.
부총재경선 등 당내민주화조치에는 차기대권을 노리는 파워그룹간의 정략과 이해가 민감하게 얽혀 있어 당개혁방안을 싸고 각 세력간의 미묘한 이해가 암류처럼 흐르고 있다.
○…당내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을 다시 촉발시키기 시작한 것은 평민당의 서울시지부 의원장선거. 이것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자 21일의 실국장회의에선 낮잠만 자고 있는 당개혁방안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조기경선론을 이끌고 있는 이종찬사무총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는 부총재경선실시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정기전당대회의 개최시기를 다루었는데 이총장계는 조기전당대회와 부총재경선을 이구동성으로 주장.
그러나 청와대와 맥이 닿고 있는 ???기조실장은 『굳이 강행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브레이크.
이어 TK그룹 실세인 김윤환총무도 『지금 부총재경선을 하면 당결속만 해친다』면서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경선제 도입을 위한 당헌개정만 하고 실제 경선은 노대통령통치 후반기쯤으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조기실시론에 쐐기.
이에 대해 이총장은 『전당대회는 늦어도 9월까지는 해야 하고 반드시 「내용물」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아 불퇴전의 의지를 과시.
○…「조기실시」그룹은 이총장을 정점으로 일부 소장파의원, 서울·호남 등지의 원외지구당위원장 및 중앙사무처의 실국장들.
이들은 부총재경선을 당내민주화의 핵심으로 규정하면서 『김대중총재의 사당이랄수도 있는 평민당도 경선제를 도입했는데 우리는 뭐냐』는 불만과 함께 『이제부터 당권경쟁은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
이 그룹은 특히 당개혁위(위원장 이종찬총장)가 「조기실시」를 건의안으로 채택했으나 2월 청와대측에서 제동이 걸린 것을 두고 『부총재경선이 빠진 개혁안은 내용없는 빈 껍데기』라고 반발.
스스로 「당내재야」라고 자처하는 일부 인사들은 청와대쪽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총재자신이 「개혁」을 지시하고선 핵심을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여차하면 정풍운동까지 엮어서 서명이라도 벌이겠다』고 으름장.
이총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오해」의 시선이 껄끄러운 듯 『개혁위원장 자리를 내놓아야겠다』며 운신에 신경쓰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조기실시 추진에는 단호함을 보여 사석에서는 자주 『부총재경선은 민정당엔 고단위활성비타민』이라고 역설.
○…곧 잘 보수성을 과시하는 TK세력은 이러한 「조기」주장에 꿈쩍도 않고 있다.
박준규대표·김윤환총무와 유학성고문·정호용의원 등 TK내 중진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부총재경선을 하면 당이 깨지고 갈라진다』며 경쟁보다는 결속을 강조.
이들은 『경선원칙에는 찬성하나 시기상조』라는 입장인데 마음 깊숙한 곳에는 경선자체도 별반 달감지 않은 표정.
정의원파동으로 마찰음을 빚었던 TK그룹은 아직 자체정비가 끝나지 않아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듯.
특히 퇴진을 거부하면서 부동의 파워를 과시한 바 있는 정의원은 당권에의 미련을 포기하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의 등장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부총재경선은 미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일각의 분석.
아직은 수면밑에 있는 당권경쟁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박철언의원 (청와대정책보좌관)과 그의 당내비선조직인 「월계수동지회」의 움직임.
주로 박의원과 직·간접의 끈을 맺고 있는 전국구 의원들과 대통령선거에서 공이 컸던 원외지구당위원장들로 구성된 「월계수회」는 최근 세확장에 주력, 지역구의원들까지 영입해 회원수가 의원만도 20여명으로 성장.
「월계수회」는 단합대회를 갖는 등 결속을 다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당사자들이 「회원가입」조차 부인하는 보안성에서 달피, 경구회 (대구·경북출신의원들모임)같이 공개적인 모임을 신언할 계획으로 알려져 눈길.
○…부총재경선에 대한 노대통령의 뜻은 「연기」쪽으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몇몇 핵심당직자들을 통해 당측에 전달.
박대표는 기회있을 때마다 『여당의 생리는 야당과 다르다』며 『경선하면 파벌만 조성되고 당은 깨진다』고 극히 부정적인 태도.
당중진인 이춘구의원도 같은 맥락인데 『여소야대의 어려움속에서 우리당에 필요한 것은 단결』이라며 『당내 민주화도 좋지만 우선 당사자들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고 피력.
부총재물망에 오르고 있는 이한동 내무장관·박준병 의원 등은 아직 출진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연기론에 동조.
경기지역에 적지 않은 세를 과시하고 있는 이장관은 뚜렷한 자기소신을 내세우지 않는 평소 스타일대로 부총재경선에도 별반 언급이 없는데 준비작업은 꼼꼼히 다지고 있다는 소문.
충청지역의 선두주자인 박의원도 당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주목하면서 당내 군출신 보수파의원들의 「계파경쟁지양론」에 합류.
당의 역학구조로 볼 때 조기경선론은 연기론에 밀리고 있어 오는 9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는 부총재경선이 실시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어서 당내 민주화가 자꾸 늦어지는 가운데 갈등은 계속 내연될 듯 하다. <김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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