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가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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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참된 예술가는 아내를 굶기고 자식들을 맨발로 다니게 하며 초 노모에게 생계를 맡기면서도 자신은 예술 이외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예술가의 가난에 대해「버나드·쇼」는 일찍이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동서고금의 예술가 치고 가난과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적빈의 생활고를 이기지 못했던「도스토예프스키」는 어느 날 귀족출신의 혁명가「게르첸」파 당대의 인기작가「투르게네프」에게 간곡히 생활비를 꿔달라는 편지를 띄운다. 「게르첸」은 그의 간청을 묵살했고, 「투르게네프」는 요구액의 반을 빌려주었다.
이듬해 『죄와 벌』이 발표되면서「도스토예프스키」는 일약 러시아 최대의 명성과 재산을 차지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인색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원한은 뿌리깊이 남아 그들과의 관계는 죽을 때까지 나빴다고 한다.
문예진흥원은 전국 예술인의44%가 월수 10만원 이하의 수입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물론 70% 이상이 창작활동 이외의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예술가들이 예술을 부업 또는 취미생활의 범주로 다룰 수밖에 없다는 문화여건이다.
문화예술 행위자가 사회의 시혜나 특혜를 무턱대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인생을 창작활동에 바치겠다는 정열과 재능이 있다면 그들을 뒷받침하고 밀어줄 수 있는 문화정책은 긴요해진다.
뉴욕시는 소호지역을 국제적 예술인 타운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엄청난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유럽의 예술가들이 너도나도 뉴욕으로 빠져나가자 당황해진 프랑스는 예술인 회원으로 등록된 예술가에겐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 대한 지원책을 벌였다. 파리의 신축 아파트 맨 위층은 의무적으로 예술가에게 최우선 분양을 해주는 것도 그 지원책 중의 하나다.
극장 입장권의 수입을 챙겨 몇 푼의 원고료를 올려주는 시혜적 지원만으로 예술정책을 펼 때는 지났다. 이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예술정책이 검토되어야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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