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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겨울바다서 5시간 버텨… 조난 일가족 구한 해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16일 오후 1시30분쯤 바닷바람을 쐬기 위해 가족들을 1.49t급 모터보트에 태우고 화성시 전곡항을 출발한 A씨(41)는 새로운 항로를 경험하기 위해 평소 가던 곳이 아닌 인천 영흥도 방면으로 배를 몰았다. 20분쯤 바다 위를 가르다 어망 등이 들어선 양식장을 발견하고선 이를 피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는데 배가 움직이질 않았다. 곧 엔진까지 멈췄다.

좌주된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추운 겨울 바다로 뛰어든 평택해경 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좌주된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추운 겨울 바다로 뛰어든 평택해경 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설상가상, 기상 상태도 갑자기 나빠졌다.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도 불면서 0.5m의 파고가 일었다.

지난달 일가족 5명 탄 보트, 갯벌에 걸려 좌주돼 #해경, 영하 겨울바다 뛰어들어 보트와 일가족 구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라 보호를 받는구나' 생각"

당시 배 안엔 A씨의 아내와 13살, 10살 된 아들 2명과 7살 된 딸까지 모두 5명이 타고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배도 없었다.
A씨는 해상 사고 발생 시 신고 등을 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해로드'를 통해 해경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평택해양경찰서 구조대는 즉각 A씨의 모터보트가 있는 화성시 제부도 북서방 2㎞로 향했다. 13분 만에 현장 인근에 도착했지만 바다가 문제였다. 썰물로 물이 빠지면서 수심이 낮아 배로 이동할 수 없었다.

좌주된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추운 겨울 바다로 뛰어들어 배 주변을 살피는 평택해경 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좌주된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추운 겨울 바다로 뛰어들어 배 주변을 살피는 평택해경 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해경 대원들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에 곧 도착한다"며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당시 제부도의 기온은 섭씨 영하 5~6도. 해경은 500~600m를 헤엄쳐 A씨의 모터보트에 도착했다.
현장을 살펴본 결과 A씨의 배도 썰물로 좌주(갯벌이나 모래 등에 얹힘)된 상태였다. 무리하게 줄로 묶어 해경선으로 끌었다간 오히려 배가 뒤집힐 위험이 있었다. 먼저 물이 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해경은 많이 놀란 A씨의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는 등 달랬다. 핫팩 등 보온장비도 건넸다.
그리고 틈틈이 바다에 뛰어들어 수심을 살폈다.

5시간 정도 지났을까. 서서히 물이 들어왔다. 해경은 예인선과 A씨의 배를 줄로 묶었다. 해경 대원 3명은 A씨의 배가 물에 뜨고 이동할 때까지 물속에서 배의 균형을 잡았다. 당도한 해경선으로 A씨 가족들이 자리를 옮기고, 예인선이 배를 끌 때까지 물속에서 수심을 살피고 A씨 가족에게 말을 걸며 안심시켰다.
오후 8시, A씨의 배가 출항지였던 전곡항으로 도착하면서 이날 구조작업도 마무리됐다.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겨울 바다에 뛰어든 평택해양경찰서 구조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A씨의 보트를 구조하기 위해 겨울 바다에 뛰어든 평택해양경찰서 구조대원들 [사진 평택해양경찰서]

A씨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최근 국민신문고에 "조난에서 구조해 준 평택해경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겨울 바다에 뛰어들면서 구조활동을 벌인 해경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우리 가족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라에 보호를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또 "바다에서 조난하고 큰일이 생길 때 국민을 보호하고 구조해 주는 해경이 있어 정말 든든하다"며 "다시 한번 해경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 글은 조현배 해양경찰청장에게도 보고되는 등 해경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이건규 평택해경 구조대 팀장(경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아서 쑥스럽다"며 "A씨가 간 항로가 어망 등 장애가 많고 수심이 낮은 지역인데 큰 사고도 없었고, 무사히 구조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택=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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