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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3·1운동 100주년에 부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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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전쟁과 함께 현대 한국 최대의 고비요 사건이다.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정신의 원류요 사상의 뿌리다. 미래의 가치요 지향이다. 우리 자신이 세계 모든 사람과 똑같이 ‘스스로’ 자유요 독립임과, ‘함께’ 평화요 존엄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3·1은 민족주의 넘는 세계 수준의 #보편주의이자 인간성 발휘 운동 #자유와 평등, 주권과 평화는 물론 #세계 보편적 인간 가치가 집약돼 #대통합·세계시민·민주공화로 간 #3·1정신의 대해로 사뭇 달려가자

대체 3·1은 어떻게 왔나? 자기갱신의 노력들이 그 뿌리였다. 새 세상을 만들려는 실학과 북학, 그리고 혁신불교, 동학과 서학이 모두 3·1의 씨앗이었다.

이들은 때로는 다퉜으나 3·1에 이르매 끝내 하나가 되었다. 민족과 개화가 만나고 전통과 근대가 조우하고 정신과 문명이 하나가 되었다. 안중근처럼 이 모두를 종합한 대합수(大合水)가 3·1이었다. 3·1은 바다였다.

3·1은 무엇이었나? 먼저 ‘이미 독립’과 ‘이미 건국’이다. <<선언서>>는 ‘조선 독립’을 주창하는 대신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며 시작하여, “조선 ‘건국’ 4252년 3월 1일”로 끝난다. 이럴진대 1948년 건국과 1919년 건국을 다투는 것은 부끄럽다. ‘독립’조차 독립 성취가 아니라 독립 회복이었다. 즉 주권 회복이요 광복이었다. 광복·광복군·광복운동·광복절이 맞다.

한국처럼 유구한 독립국가의 역사를 갖는 나라들은 잠시 주권을 빼앗겼다 하여 자기를 부정하는 독립운동·독립군·독립기념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대신 재정복(reconquista), 부흥(risorgimento), 저항투쟁(résistance)이라고 부른다. 3·1 100년, 현대 한국의 역사를 오직 일제 통치와 연결시키는 ‘(항일)독립’·‘독립운동’ 담론과 기억체계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독립적 사유와 역사해석과 미래설계를 차단한다.

3·1은 민족주의를 넘는 세계 수준의 보편주의이자 보편적 인간성의 발휘 운동이었다. 진리와 정의, 양심과 도의는 물론 자유와 평등, 주권과 화합의 도저한 세계 보편적 인간 가치가 알알이 집약되어 있다. 자연스레 인류 공존과 평화는 최고 목표였다. 한국 독립, 한·중·일 공존과 공동번영, 동양평화, 세계평화, 영구평화, 인류행복으로 이어지는 절정의 완전평화 구상은 소름이 돋는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이 모든 주장과 행동의 바탕을 이루는 3·1정신의 정수였다.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죄를 먼저 꾸짖는, 그리하여 자기 죄를 갚고자 끝내 죽음으로써 죄를 씻고 적을 막아내(려했)었던 저 이순신·류성룡·민영환·안중근의 절대희생과 절대공존의 정신계보를 잇는다. 한국역사 최고 영웅들이 일본과 대적한 위인들이었음에 비추어, 이들의 무비(無比)한 수오지심과 ‘내 죄(mea culpa)’와 ‘우리 허물(nostra culpa)’ 극복의 인식 지평은 인간 정신의 최고 경지라 불러 부족함이 없다. 3·1의 수오지심과 인류공영의 정신은 단연 절정이다.

3·1은 무엇을 남겼나? 무엇보다 3·1은 민주와 공화가 만난 첫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았다. 민주공화의 첫 토대였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바로 파벌과 갈등에 시달렸고 통합은 무너졌다. 게다가 공산주의계열은 3·1 이후의 ‘대한’ ‘민주공화’를 부정, ‘조선’공산당·‘조선’혁명·‘조선’민족해방으로 갈려나갔다. (훗날 ‘조선’인민공화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같았다) ‘대한’을 부인하려 ‘조선’총독부·‘조선’지배·식민지 ‘조선’을 말한 일제처럼.

광복 이후 첫 3·1운동 기념식은 좌우로 완전히 갈렸고, 한쪽의 기념식은 임정계열 인사들이 투척한 수류탄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통합과 공존의 3·1정신은 사라졌다. 전후 세계 분할점령-연합점령 국가 중 단 한 나라도 이토록 빨리 적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3·1정신은 일제 직후 우리 스스로 두 번째로 죽인 것이었다.

근대 이래 지금 우리는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상대 나라와 국력에서 가장 근접해있다. 누천년 조공관계를 유지하였던 제국과는 전후 내내 민주제도와 경제발전, 기술과 삶의 수준에서 앞서 왔다. 전자는 500년래, 후자는 2000년래 처음이다. 이제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주의를 품을 때다.

3·1 100년. ‘항일’과 ‘독립운동’의 좁은 의식세계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정신세계와 미래공간을 활짝 열자. 우리의 뿌리는 항일보다 깊고 줄기는 독립보다 크다. 대저 수오지심과 자기혁신에 바탕해 대통합·민주공화·세계시민·보편평화로 나아간 3·1정신의 대해로 사뭇 달려가자. 그리하여 최고 최량의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여 세계 보편가치와 이상을 끌고 가보자. 우리 한번 해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