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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요방 사망 중국 정정 새 변수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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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야오방」(호요방) 전 중국 당 총 서기의 사망과 중국 대학생들의 호에 대한 추모 활동이 민주화·자유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의 중국 정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5일 사망한 호요방은 총서기 재임 중 개혁·개방의 기수로서 급진 개혁을 대표했던 인물이며 특히 지식계층과 대학생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다.
그는 81년 당의 전면에 나서 82년 당 총 서기직을 맡은 이후 실각하는 87년 1월까지 약6년 동안「덩샤오핑」(등소평)의 후견아래 개혁개방의 견인차 역할을 주도했다.
등소평의 후계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호는 86년12월부터 북경·상해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거세게 물결쳤던 대학생들의 민주화·자유화 시위와 관련, 87년1월 온건개혁파(보수파)의 주도하에 개최된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총 서기직을 박탈당하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왔다.
호요방이 사망하자 그 가족들이 호의 총 서기직 사퇴에 대한 결론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학생들이 호의「평반」(억울한 죄를 밝히고 공정하게 재결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교내 대자보를 통해『죽지 않아야 될 사람은 죽어버렸고 죽어야 할 사람은 죽지 않고 있다』는 노골적인 내용의 불만을 거침없이 표현했으며 그 양상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15일 이후 대학생들의 시위가 상해 등 지방으로까지 번지는 등 확산되고 그 요구사항도 강도를 더해 가는 동안 이렇다할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중국당국이 18일 중남해에 진출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킴으로써 대학생들의 시위에 한계를 분명히 했다.
중국 당국은 호가 총 서기직을 박탈당했으나 정치국원직은 보유하고 있었으며 당 중앙결의로『호요방 동지는 충성된 공산주의 전사요,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로서 탁월한 영도자이다. (그의) 일생은 당과 국민에 불후의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한데다 고인에 대한 추모활동으로 시작된 대학생들의 시외를 정면으로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어 그동안 적극적 제재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22일로 예정된 호의 장례식이 아직 며칠남아 있어 그냥 두면 시위가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데다「리펑」(이붕) 수상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구호가 나오는 등 강도를 더해가자 학생들의 자극을 피해 온건한 수단으로 해산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6년 학생들의 시위로 호가 실각하는 등 중국 지도부에 변화가 있었던 전례에 비추어 이번 시위는 높은 인플레 등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과 지식인들의 목소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중국 정정에 새로운 변수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홍콩=박병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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