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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 게임만 하던 초등생이 공모전 최우수상 받은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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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주말 내내 컴퓨터 게임만 붙들고 앉아 있는 초등생 자녀를 어쩌면 좋을까.

연말 특집 '교육+혁신' 현장을 가다 #게임만 하던 아이가 큰 일 해내 #세계가 주목하는 메이커 교육의 힘 #미래 필수 덕목인 문제해결력 높여

학부모라면 ‘어쩌면 좋을까’라는, 근심 어린 뉘앙스가 담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자기 자식이 주말 내내 게임만 하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는 부모는 거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런 초등생이 가끔 깜짝 놀랄만한 큰일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죽이며 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동기 부여와 목적의식이 더해졌을 때 일어난다. 즉 뚜렷한 동기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주말 내내 게임만 붙들고 앉아 있어도 큰일을 해내는 수가 있다.

지난 10월 여시재 미래도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학생 누나·형들을 제치고 최우수상을 거머쥔 정희윤(성남 이매초 3년),신희중(충북 음성 대소초 3년)이 그런 케이스다.

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두 소년은 공모전에 참여한 초·중·고·대학생 총 150여개 팀 중 유일한 초등생 수상자다. 지난 11월 여시재와 중국 칭화대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포럼에 수상자로 참석하는 행운도 얻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등 명사들이 참석한 큰 행사였다. 희윤·희중군은 내년 최우수상 특전으로 얻은 프랑스 유명 IT회사 다쏘시스템 본사 견학과 유럽 탐방에 나설 계획이다.

공모전은 미래도시 아이디어를 마인크래프트로 구현한 맵과 이를 설명한 유튜브 영상 프레젠테이션을 심사해 수상자를 가렸다. 예선을 거쳐 스무 팀이 가려졌고 결선 프레젠테이션에서 수상자가 결정됐다.

희윤·희중군이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미래 도시.

희윤·희중군이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미래 도시.

김갑성 4차산업혁명위원회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 위원장(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 김승환 포항공대 대학원장(물리학과 교수) 등 심사위원들은 희윤·희중군 아이디어의 구성적인 측면에 높은 점수를 줬다. 여시재 관계자는 “제출된 아이디어 중 상당수가 특정한 건물을 중심으로 설명했는데 희윤·희중군의 아이디어는 여러 건물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를 연결한 도시를 내놓은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희윤·희중군이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핵융합발전소.

희윤·희중군이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핵융합발전소.

두 소년은 도시 안에 핵융합 발전소를 둬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했고, 행성 이동 포털과 로봇이 미로를 찾는 식의 새로운 미래 스포츠 등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마인크래프트로 구현된 미래 도시는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게임을 오래 해온 매니어만 알 수 있는 특이한 기능을 아이디어에 접목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집에서 희윤·희중군을 만났다. 이종사촌 사이인 두 소년은 올해 여름 한 달 동안 주말이면 희윤군의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마인크래프트만 했다고 했다. 희윤군은 “준비부터 결선까지 두세달 동안 남는 시간은 다 써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놀면서 만든 거라 결선까지 갈지도 몰랐고 상은 기대도 안 했어요”라고 했다. 우쭐대기보다 솔직한 말투였다.

희윤군이 미래 도시에 대한 아이디어와 도시 계획, 건축 설계를 하면 희중군이 도와 함께 마인크래프트로 도시를 채워나갔다. 희윤군은 “지구온난화로 수면이 상승할 것 같아서 핵융합 발전소를 공중에 띄웠고, 지상은 좀 더 새롭지만 인간다운 기술을 넣으려고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다른 행성으로 순간 이동한다는 발상이 독특해서 물었더니 희중군이 답했다. “그거 원래 마인크래프트에 엔드월드라고 엔드드래곤 잡는 곳이 있거든요. 설정을 좀 달리해 봤어요.”

올해 메이커 교육 프로젝트인 '영메이커 서울 2018'에 참여한 희중·희윤군. [사진 신지현씨]

올해 메이커 교육 프로젝트인 '영메이커 서울 2018'에 참여한 희중·희윤군. [사진 신지현씨]

남자 초등생 특유의 산만함으로 인해 대화를 오래 이어가기는 힘들었지만, 마인크래프트 얘기만 나오면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마다 한 바탕씩 떠들어대곤 했다. 서재엔 마인크래프트 책만 10권이 넘게 꽂혀 있었다. 거실 한쪽 벽면의 반쯤이 책으로 채워져 있고 바닥엔 레고를 담은 박스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남는 방에도 레고 박스가 더 있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두 소년의 생각하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이 2년 간 참여해 온 한 프로젝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는 ‘메이커 교육’이다.

올해 메이커 교육 프로젝트인 '영메이커 서울 2018'에 참여한 희중·희윤군. [사진 신지현]

올해 메이커 교육 프로젝트인 '영메이커 서울 2018'에 참여한 희중·희윤군. [사진 신지현]

메이커 교육은 교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일률적으로 학습하는 현재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만들어진 새로운 교육 방식이다. 교실이 아닌 실험실이나 작업실에서 스스로 구상해 원하는 것을 만들고,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며 배워나간다. 선생님에게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받는 게 아니라 자기 힘으로 하다 벽에 부딪힐 때 도움을 받는다. 대부분의 과정은 스스로 주제나 목표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지식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체계화한다.

희윤군은 2016년부터, 희중군은 2017년부터 ‘메이커 교육실천’이라는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메이커 교육실천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4차례에 걸쳐 10~16주간 주말을 이용해 전국 각 지역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참여한 학생들이 각자 디자인해 만들 것을 정하면 소재를 제공받고 뚝딱뚝딱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참여자들은 마지막 주에 발표회를 열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공개한다.

정희윤군이 만든 작품 '지금은 건물 공사중'. [사진 신지현]

정희윤군이 만든 작품 '지금은 건물 공사중'. [사진 신지현]

희윤군은 방구석에 있는 정체불명의 물건을 가리키며 자신이 만든 건축물이라고 소개했다. 작품명은 ‘지금은 건물 공사중’이라고 했다. 아이스바 작대기와 나무젓가락을 글루건으로 붙여서 만든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엔 조금 조잡한 건축물이었다.

희중군은 기존 고무동력기가 방향을 조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앞부분에 RC카를 붙인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희중군은 “방향을 조절하려고 만들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거의 날아가지 않았어요. 균형도 안 맞았고, 완전히 실패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실패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치고는 즐거운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신희중군이 만든 RC 고무동력기. [사진 신지현]

신희중군이 만든 RC 고무동력기. [사진 신지현]

두 소년은 프로젝트에서 자석을 이용해 띄울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고안했다면서 칠판을 이용해 갑자기 둘만의 토론에 들어가기도 했다. 벽에 약한 자석을 늘어놓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자석을 설치한 뒤 통로 바닥에 강한 자석을 붙이면 엘리베이터를 띄울 수 있는 것인가를 놓고 10분 가까이 토론을 이어갔다. 엉망진창으로 자기주장만 이야기하는가 싶었지만, 대화를 통해 조금씩 실마리를 발견해 나가는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조잡하든 그럴듯하든 무언가를 스스로 정해서 만들고, 실패든 성공이든 그 과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해낸다는 것에 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

메이커 교육은 다른 사람이 지식을 떠다 먹이는 학습 방식보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이해의 정도나 범위가 넓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 통제해야 하므로 넓고 멀리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발표하는 전시회, 그리고 일의 과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가면서 협업의 경험도 쌓을 수 있다.

희윤·희중군은 주말을 이용해 몇 차례 프로젝트에 참석한 게 전부이므로 메이커 교육으로 ‘개안’을 했다고 보기는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눅 들지 않고 어려움 없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능력들은 다가오는 4차 산업시대에 매우 높게 평가되는 것들이다. 일의 미래와 관련한 권위 있는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제이콥 모건에 따르면 미래에 필요한 5가지 역량은 ①끊임없는 학습 능력 ②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책임감 ③공감 능력 ④자기 인식 ⑤사업가처럼 생각하기다.

이는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는 식의 교육으로는 발달시키기 어렵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완수해 나가는 식의 교육으로 길러지는 역량이다. 메이커 교육이 미국에선 4차 산업시대에 꼭 필요한 미래형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에선 2012년 이런 움직임이 시작됐고 2014년엔 정부 주도로 메이커 교육이 시작됐다. 도입 6년째이지만 국내 여러 분야의 사교육 학습방법만큼 빠르게 번지지 않는 이유는 이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입시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메이커 교육의 여러 장점은 입시 제도가 측정해 점수화하기 쉬운 능력들이 아니다.

두 소년이 메이커 교육에서 얻은 건 사고력만이 아니다. 이번 공모전의 가장 힘들었던 난관을 메이커 교육에서 만난 대학생 멘토의 도움으로 풀어냈다. 바로 영상 제작과 프레젠테이션이다. 아이디어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었지만 영상을 만들 수 없었기에 대학생 심재광(19)씨의 힘을 빌려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여시재 미래도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인 심재광씨. [사진 여시제]

사실 메이커 교육은 개인의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정신은 공동체·협업·공유라는 가치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희윤·희중군과 대학생 멘토의 협업은 혼자 힘으로 할 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함께 하면 풀린다는 메이커 교육의 정신이 현실에 적용된 사례가 아닐까.

두 소년의 발전 과정과 수상 소식을 반긴 동시에 안도한 건 그들의 어머니였다. 희윤군의 어머니 신지현(41)씨는 “직장 엄마라서 애를 너무 방치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어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인크래프트는 온라인 버전의 레고같은 것이라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왔는데 애가 너무 몰입해서 얘기도 그것에 대한 것만 하고 유튜브도 그것만 보고 해서 학업을 놓치는 게 아닌가 했는데, 돌아보면 자라면서 헛된 시간은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희윤군은 최근 2019학년도 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 부설 영재교육원 영재교육대상자로 선정됐다. 신지현씨는 “메이커 교육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일주일 한번 독서논술을 하고 수영을 배우는 게 사교육의 전부였어요. 직장 다니는 엄마가 자율적으로 키워도 잘 자란다는 걸 계속 보여줘야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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