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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주고 싶어도 여력없다”…8350원의 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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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최저임금 인상에 대처하는 자영업자의 자세를 ‘공식(公式)’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최저임금 7530원으로 인상→아르바이트 근로시간 줄이기→사장 근로 늘리기→(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아르바이트 해고하기→이익 줄어도 버티기.’

본지가 지난 24~25일 서울 종로·명동 일대 식당·편의점·노래방·PC방 등 최저임금 적용 업종 30곳을 현장 진단한 결과다. 그런데 내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또 오른다면? 아마도 공식 끝에 ‘더 버티다 문 닫기’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본지 2018년 12월 27일자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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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저임금 인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30곳 중 18곳이 “8350원으로 오르는 줄도 몰랐다”고 답할 정도로 ‘무방비’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을 올려 줄 ‘여력’이 없다는 것. 명동의 한 갈빗집 주인 신인철(68)씨는 “길게는 30년 이상 함께 고생한 직원에게 나라고 더 주고 싶지 않겠나. 너무 어려워 가게 문 닫고 임대료 받는 게 낫지만 직원들이 눈에 밟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종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철근(56)씨는 “내가 직접 14시간씩 일하는 데도 더는 버틸 수 없어 폐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올라도 괜찮다”고 답한 건 명동의 편의점 한 곳뿐이었다. 임대료 높은 명동·종로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버겁다고 하면 ‘앓는 소리’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뒤집어 보면 임대료 낮은 대신 유동인구가 명동·종로보다 훨씬 적은 골목 상권 형편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서울 화곡동의 한 음식점 주인 채건영(38)씨는 “대한민국 대표 상권인 명동·종로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어렵다는데 여기는 오죽하겠느냐.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임대료는 임대료대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대로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27일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지난해 월급쟁이 평균 연봉이 3519만원이었고, 억대 연봉자가 72만명을 넘겼다고 발표했다. 내년에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것으로 추산되는 근로자 290만~501만명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뉴스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방향이 옳더라도 부작용이 크다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종로의 한 PC방 사장 조모(45)씨는 “아르바이트생 살리는 것도 좋지만 그러자고 자영업자 죽이는 게 대안은 아니잖느냐”고 꼬집었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