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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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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잠수함은 바다의 자객(刺客)이다. 심해(深海)라는 천연 은폐물을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데서 나오는 전략적 가치는 항공모함에 필적한다. 제인 함정 연감에선 전투 서열 1위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잠수함이 진가를 발휘한 무대. 독일은 영국 해상 봉쇄에 U보트를 동원했다. U보트는 해저선(undersea boat)의 약자로 독일 잠수함의 통칭. 당시엔 '신기(神器)'였다. 작전에 투입된 U보트 78척이 매달 60만t의 영국 상선을 잡았다. 무제한 잠수함전이다. 1914년 9월 22일엔 한 척의 U보트(U-9)가 30분 만에 영국군 순양함 3척을 격침시켰다. 300년 동안 세계 대양을 지배해온 대영함대엔 치욕적인 날이다. 잠수함 탐지 장비(소나)가 개발된 것은 이 무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때도 양상은 마찬가지. U보트는 40년 한 해만 영국 배 822척을 물귀신으로 만들었다. 영국군 선단(船團)을 발견하면 U보트를 집결시켜 동시에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이리떼 작전'. 처칠 영국 총리는 훗날 U보트는 연합국의 승리를 의심하게 만든 유일한 위협이라고 회고했다.

전쟁 기간 중 U보트의 신화는 깨진다. 소나의 개량과 더불어 레이더가 실용화됐기 때문. 당시만 해도 U보트는 가잠함(可潛艦). 주로 수면에 있다가 작전 때 잠시 잠항했다. 축전지가 동력원인 만큼 수면 위에서 디젤기관을 돌려 충전해야 했다(공기가 없는 바다 속에선 엔진을 돌릴 수 없다). 레이더에 노출된 U보트는 구축함의 표적이 됐다.

독일이 이에 맞서 장착한 장비가 스노클(snorkel). 잠항 중에도 충전할 수 있도록 공기를 끌어들이는 관(管)이다. 물속의 코끼리가 밖으로 내놓은 코라고 할까. 그러나 이 조그만 장치도 고정밀 레이더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기술전에서 지면 전쟁에도 지고 만다.

우리 해군이 9일 최신형 1800t급 잠수함 손원일함 진수식을 했다. 이 함은 U보트의 손자뻘. 독일 호발츠베르케-도이체 조선(HDW)사가 개발했다. HDW사 전신(前身)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 U보트를 양산했다. 손원일함은 2~3주 동안 스노클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물속에서 공기 없이도 가동할 수 있는 추진장치(AIP)를 갖췄다. 보이지 않는 잠수함의 본모습에 바짝 다가섰다. 핵추진 잠수함을 빼고는 최고 성능이다. 작전 반경도 한반도 연안을 넘어선다. 동북아 해역의 새 강자다. 대한민국 해군의 구호는 실현돼 가고 있는가. 바다로! 세계로!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