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위기 「라이트」미하원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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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짐·라이트」 미국하원의장이 징계 또는 사임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외부의 재정적 혜택을 받아온 그의 행동이 의회 윤리규정을 저촉했다고 17일 하원윤리위가 공식 결정, 발표했다. 한동안 의회가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의장 자신은 정치생명이 불투명해지고 그렇지 않아도 의심받아온 의회윤리에 대한 미국민의 불신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작년 6월부터 「라이트」문제를 조사해 온 윤리위는 『「라이트」의원이 공직자 윤리규정과 기타 의회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사례가 69건 파악됐다』고 밝혔다.
변호사가 고용되고 1백20만달러가 투입돼 조사된 그의 비위는 크게 두가지 형태로 밝혀졌다. 하나는 친분이 깊은 업자로부터 금전 등을 받아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쓴 책에 대해 과도하게 많은 저작료를 받은 것이다.
금전부분 중 그에게 가장 아픈 대목은 친구인 업자로부터 부인이 월급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끈질기게 계속돼 온 보도내용과 이날 조사발표에 따르면 「라이트」부인은 매년 1만8천달러의 봉급을 「조지·맬리크」라는 고향 텍사스의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받아왔다. 「라이트」의장은「맬리크」의 아들 소유로 돼 있는 텍사스의 콘도미니엄을 사용해 왔는가 하면 캐딜랙승용차까지 제공받았다.
79년부터 89년까지 10년이상 봉급·집·자동차 등 14만5천달러에 가까운 혜택을 받아왔다고 윤리위가 공개했다. 이같은 혜택은 의회규정상 「선물」이며 연간 1백달러를 넘는 선물은 보고해야 하는 의무규정에 따라야 했다는 게 윤리위의 판단이다.
윤리위는 그가 받은 저작료도 강연료수입의 변형으로 해석했다.
의회규정상 판권 등 저작수입은 외부수입에 해당되지 않지만 「라이트」가 쓴 「공직자의 회상」은 서점판매가 아닌 외부대량구매형대로 소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미하원은 의원들의 강연료 등 외부수입을 봉급의 3O%이내로 제한하고 있는데 「라이트」는 이 책의 판권이 책값의 55%나 된 점이 지적되고 있다.
「라이트」문제가 표면에 제기된 것은 지난 해 당시 법무장관 「에드윈·미즈」의 업계유착문제가 한창이던 무렵이다. 자칫하면 「미즈」문제가 한 달뒤로 예정돼 있던 공화당 대통령후보 선출전당대회와 「부시」의 선거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질 수가 있었다. 공화당으로서는 「미즈」사건을 상쇄하고 전당대회에 대한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라이트」건에 대한 집중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더구나 「부시」취임 후 민주당은 「존·타워」국방장관 지명자에 대한 동의에 거부함으로써 공화당의 감정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라이트」건은 그 분풀이의 호재가 된 셈이다.
민주당도 내심 「라이트」를 옹호할 생각들이 강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겉으로는 찬성할 수 없어도 내심으로는 은근히 바라고 있던 세비인상안을「라이트」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본인도 잘못이 없으니 조사할테면 하라는 태도에서 민주당소속으로서는 당내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위조사에 자연스럽게 동조할 수 있었다.
윤리위의 이날 결정은 1단계 조치로서 징계까지 가려면 『명백하고 납득할 만한 증거』에의해 혐의가 확정되어야 하는 윤리위의 제2단계와 하원 전체회의가 남아있다. 이 과정은 심판형태를 갖춰「라이트」를 상대로 한 조사가 진행된다.
민주당에서는 「명백하고 납득할 만한 증거」가 규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믿고 「라이트」의 명예회복에 희망을 거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공화당측의 펀칭백 신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는 상당한 민주당 동조도 예상된다. 「타워」를 윤리문제로 처단하면서 「라이트」는 면제한다는 게 모순이기 때문이다. 「라이트」스스로는 상처받는 기간을 되도록 줄이기 위해 오늘 당장 윤리위 증언에 나서겠다고 서한을 보냈다. 공화당이 이런 자비를 베풀 리가 없다.
「부시」는 취임 초 의회에 대해 여야협조 분위기를 강조했지만 공화·민주관계는 원만하지 않다. 행정부의 주요 안건처리에도 영향이 미치지 않을 지 우려하고 있다.
2O세기초까지만 해도 하원의장은 미정치에 있어 최강자였고 「라이트」전임자 「토머스·오닐」때만 해도 상당한 힘의 회복이 있었다. 「라이트」에 대한 정치적 타격은 민주당 전체에 대한 타격으로 연결될 것으로 민주당은 우려한다. 당장 내년 선거때 자신들에게 영향이 미칠까 걱정들이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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