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못 보튼「정치 내??」-이수근<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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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평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야 4당 지도자들도 의원 친선 외교니, 시찰이니, 초당 외교니 하는 그럴싸한 명분을 둘러대면서 외유라면 남에 질세라 잘도 나가고 또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상공위의 경우 소속의원 25명중 19명이 현재 3개 반으로 외유 중인 사실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4당 지도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련·중국 등 공산권 방문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때로는 우물안 개구리 식의 인식의 틀을 깨기 위해, 때로는 정부의 공식채널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기 의해 의원들의 외국방문이 값진 기능을 해봤고 또 할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의원 및 정당 지도자들의 외국 방문 및 그 추진 계획에 깊은 유감과 개탄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사활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될 중요현안이 현재 워싱턴에서 진행중 인데도 여야 지도자들이 일언반구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통상법 슈퍼301조라는 신 병기로 우리의 목을 각일각 죄어오고 있다.
이 법에 의한 첫 우선 협상 지정 대상국으로 일본 등은 빠지고 우리가 낄 것은 틀림없다는 우울한 소식이 계속 날아들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권은 먼 산의 불 보듯 거의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말끝마다 초당외교 운운하면서도 정작 사활적 국익이 걸린 문제에는 함구하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에게 나라의 장래를 맡긴 우리 자신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부시」미 대통령이 한번 만나줄 눈짓만 보여도 제백사하고 워싱턴으로 쪼르르 달러갈 우리 정치인들의 체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선 협상 지정국을 면해 보자고 대규모 구매 사절단이 미국을 돌고 있고 상공 장관이 워싱턴에서 버거운 씨름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야권 지도자들이 워싱턴에 가서 의회 등 미 조야 인사들이나 언론을 상대로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설득·이해시키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우리들의 몽환이어서야 되겠는가.
집권의 길이 바로 이런데 있는데도 국내 정치현안에만 매달려 아옹다옹하는 여야 지도자들을 보노라면 실망에 앞서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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