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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표낼게요" 공무원의 폭로 검찰은 부담스러워했다

중앙일보

입력

정병하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27일 오전 대검찰청에서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 의혹 관련 감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대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병하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27일 오전 대검찰청에서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 의혹 관련 감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대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거기 파견 갈거면 차라리 사표내겠습니다"

靑압수수색하며 수사 의지 보이는 검찰 과거와 다를까 #"장진수·박관천·권은희 폭로 실체, 당시 검찰에선 못밝혀내" #대검, 김태우 비위혐의 중징계 野 "메신저 공격하는 전형적 전략" #검찰,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추가 압수수색 가능성

지난 7월 드루킹 특검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여권 핵심 인사의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출신의 고위 인사는 파견을 요청한 후배 검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인사는 "최순실 특검 때는 준비기한 3일만에 검사와 경찰 수사관을 모두 채웠고 바로 참고인 조사를 시작했다"며 "드루킹 특검 때는 파견을 요청한 검사들이 사표를 낸다고 버텨 수사 인력을 구성하는 것도 버거웠다"고 말했다. 정권 말기 특검과 정권 초기의 특검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수사 결과를 질타하는 언론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것이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리의혹 등 특감 보고서를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전 청와대 특감반원)이 27일 대검찰청에서 비밀누설과 비위 혐의로 해임 요구를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여기까지는 정해진 수순이며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온다. 김 수사관의 징계와는 별개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의 실체는 검찰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수사관과 같이 정국을 흔들었던 공무원들의 폭로는 당시 정권의 검찰에서 외면을 받곤 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정윤회씨의 실체를 드러냈던 박관천 전 경정, 경찰의 국정원 댓글조작 축소수사 의혹을 제기했던 권은희 현 바른미래당 의원(전 경정)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당시 핵심 윗선인 청와대를 건드리지 못했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정권이 바뀐 뒤 검찰은 재수사를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수사와 경찰의 국정원 댓글조작 축소 수사는 문재인 정부 검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박 전 경정의 경우 최순실 특검에서 실체가 드러났고 전직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이 모두 구속됐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민감한 첩보나 수사는 지검장, 그후 대검까지 보고된다"며 "현 정부에서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검찰 수사의 정무적 판단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26일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대한 첫 압수수색이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동부지검으로 이첩된지 닷새만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특감반의 PC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박 비서관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 특감반원이 사용한 컴퓨터 등이 압수 대상에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청와대 특감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검찰 관계자들이 이날 저녁 압수품들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청와대 특감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검찰 관계자들이 이날 저녁 압수품들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언론에 처음 사건을 폭로했던 김태우 수사관에 대한 압수수색, 청와대에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박용호 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에 대한 조사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최근 공개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를 위해 환경부에 대한 압수수색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에서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 출신의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간인 사찰의 윗선으로 일각에서 지목하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에 대한 수사가 핵심"이라며 "단순 보여주기식 압수수색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최교일(56) 자유한국당 의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드루킹 특검 당시 검경의 수사를 보면 이번 검찰의 모습 역시 상당히 우려된다"며 "증거가 명확히 확보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박 전 센터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동부지검 주진우 부장검사의 동료검사는 "정권 초기라 상당힌 부담이 되겠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적인 수사를 이어가는 검사"라며 "청와대의 압수수색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 조금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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