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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데드 크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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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부문 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부문 에디터

“한번 넘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선인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선 현상을 ‘데드 크로스’로 표현한 데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박사가 제기한 의문이다. 하락세 장을 뜻하는 증권 용어의 차용인 데다 설령 그런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데드(죽음)’로 받아들일 정도냐는 불편함이다. 그는 반례도 들었다. YS(김영삼)와 이명박 전 대통령 때로 “특히 이 전 대통령 때 지지율 복원 과정은 국정 지지율 관리에서 중요한 사례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사실 시간은 기억의 디테일을 지우곤 한다. 대통령 지지율과 시간의 함수도 예외는 아니다. 내리 하락으로 기억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 박사의 말대로 이 전 대통령의 경우는 독특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월별 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집권 2년 차인 2009년 중반부터 크게 올라 4년 차인 2011년 3월까지 강세였다. 취임 후 두 번째로 높은 지지율(54.3%)을 기록한 건 2년 차인 2009년 10월이었다.

말 그대로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4·29 재·보선 참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체감된 싸늘한 여론에 청와대가 반응한 것이다. 이른바 ‘근원적 처방’→중도실용→친서민 행보다. 한반도 대운하를 안 하겠다고 발표했고 청와대를 개편했으며 야권의 대선후보(정운찬)를 총리로 영입했다. 경쟁자(박근혜)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당시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의원들이 꽤 있었다. 또 이런 경험도 공유되곤 했다.

“원내대표가 ‘청와대가 민심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당 전략보고서를 직접 주라고 했다. 평소엔 2장인데 10장 분량으로 만들었다. 왜 미움받는지 욕을 많이 썼다. 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이명규 당 전략기획본부장)

“대통령에게 내·외부 두 개의 보고서가 전달됐다. 내용은 같았다. 이념을 0(진보)부터 10(보수)으로 봤을 때 대선 때엔 5.2로 여겨졌는데, 이젠 보수 우경화돼 7이란 취지였다.”(여권 인사)

대통령에겐 책임감 못지않게 반응성도 중요하다. 한 지인이 최근 유행하는 농담이라며 보내준 문구다. 청와대 뒷산이 ‘적폐청산’, 거기 절과 부처가 ‘민간인 불법사찰’ ‘내로남불’, 청와대 내 음용수가 ‘불순물’…. 권력은 애정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경멸당하거나 미움받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 때론 과감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청와대엔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고정애 탐사보도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