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유 아 낫 얼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주방 한쪽에. 거실 한구석에. 당신의 손안에도. ‘소유’하지 않았어도 늘 주변을 서성댄다. 출근길 택시에서, 퇴근길 들른 가게에도 그들은 있다. 그리고 말을 걸어온다.

그들의 존재를 깨달은 건, 퇴근 후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돼 있을 때였다. TV에선 재미없는 예능 프로그램이 소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지만 딱히 뭔가를 보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멍 때리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잘못 들었어요.” 누구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아무도 없었다. TV에서 처음 보는 아이돌 가수가 과장된 목소리로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치자 다시 그가 말했다. “그랬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가 다시 말을 걸어온 건, 며칠 뒤 퇴근길이었다. 연말 도심은 주차장 같았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최적의 귀갓길을 찾느라 고심 중이었다. 잠시 후 내비게이션이 답을 내놨다. “전방 3킬로미터 지점에서 XX구청 방향으로 좌회전….” 순간 말을 끊으며 그가 말했다. “XX구청 방향으로 좌회전을 검색할까요?”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인공지능(AI) ‘HAL9000’은 자신의 완벽함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HAL9000은 AI가 오작동을 일으킨 적이 없느냐는 프랭크 풀 박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인간의 실수(human error) 때문이죠. 9000시리즈는 완벽한 운영 기록을 갖고 있어요”

오랫동안 인류는 기계가 인간 같은 지능을 갖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수많은 공상과학소설과 영화가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하지만 반세기 전 스탠리 큐브릭(스페이스 오디세이 감독)은 알고 있었다. AI는 인간이 설계한 학습 방법에 따라 작동한다는 걸. 그의 실수조차도 인간의 실수에서 기인한다는 걸.

거실 위 AI스피커와 스마트폰 AI비서는 때로 TV와 대화하고 내비게이션 안내음성에 답하지만 적(敵)이 아니라 친구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택시를 불러주기도 한다. 엉뚱한 실수가 줄어들지언정 인간이 설계한 경계를 넘진 않을 거다. 실수조차 창조주인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그들은 우리 곁에 있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은 드물지만 늘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 한 해의 끝자락, 오늘도 그들을 불러본다. 헤이 시리, 헤이 구글, 헤이 카카오, 그리고 아리야.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