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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는 매티스 아닌 트럼프” 안전핀 뽑힌 워싱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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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임 의사를 밝힌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2017년 9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임 의사를 밝힌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2017년 9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 세계 모든 현안을 군사력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

미국 주류 언론들 일제히 우려 #시리아 철군 이견이 도화선 돼 #매티스, 미친개 별명과 달리 냉정 #전 국방부 관리 “군 신망 두터웠다” #내년 비핵화 협상 틀어질 경우 #대북 ‘코피 작전’ 막을 인물 사라져

지난해 1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준청문회. 이 자리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꺼낸 자신의 국방 철학이다. 미군 지상군 제2해병사단을 이끌고 바그다드로 진격해 이라크전 승리에 기여했던 전장의 지휘관이 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이 되기에 앞서 꺼낸 국방 철학은 ‘무력 지상주의’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근본적인 힘은 위협(intimidation)과 감화(inspiration)다. 나는 위협의 분야에 있었다”며 “후자(감화)는 지난 20여 년간 거의 구사하지 않았다. 감화의 힘은 때론 (위협만큼) 강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날 군사위의 한 공화당 상원의원(린지 그레이엄)은 “장군, 내가 장관으로 부를까요?”라며 공개적으로 호감을 드러냈다. 청문회가 아니라 사실상의 장관 취임 축하 자리를 연상케 했다. 그달 워싱턴포스트(WP)는 매티스 장관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한 피해를 복구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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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매티스 장관을 트럼프 대통령이 2년도 안 돼 내치며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철군하면서 동맹국을 무시하고 권위주의 국가에 관용을 베풀었다고 지적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서 매티스 장관의 이 같은 용기를 칭찬하자 격노했다”고 전했다. WP의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본 드렐은 앞서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장관을 ‘매드 독(Mad Dog·미친 개)’으로 부르길 즐겼지만, 그 별명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꼬집었다. WP는 은퇴한 4성 장군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악당 대통령”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CNN은 트럼프를 “최고의 질서파괴자(disruptor-in-chief)”라고 묘사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미국 전역을 혼란에 빠뜨린 주범이 바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도대체 매티스 장관이 누구길래 미국 주류 언론들이 이리 흥분하는 걸까. 매티스 장관은 별명이 ‘매드 독’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는 ‘매드(미치지)’하지 않다. 그를 접했던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에 가서 보니 매티스 장관을 놓고 각종 전설 같은 얘기들이 떠돈다. 그만큼 군 안팎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티스 장관은 스토아 학파(금욕주의) 철학자 대접을 받는다. 7000권이나 되는 장서를 읽어서다”라며 “하지만 전쟁터에선 절대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냉정한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금욕과 차가운 지휘력이 함께 있는 그의 스타일을 놓고 ‘승병(僧兵·War Mon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 의회 전문지인 더 힐은 23일 매티스 장관의 조기 사임으로 트럼프 내각에서 공석이 한 자리 추가됐지만, 미 의회 지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해 앞으로 후임자 임명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매티스 장관의 빈 자리는 당분간 패트릭 섀너핸 국방부 부장관(차관)이 채운다. 하지만 섀너핸 부장관이 공식 후임자로 지목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선례에 비춰 트럼프 대통령이 장관 대행을 지명했더라도 별도 인물을 새로 기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에 맞는 ‘예스 맨’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방장관 후보군이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과 궁합이 맞지 않아서다. 몇 달 전부터 워싱턴 조야에서 후임 장관으로 거론됐던 잭 키언 전 육군참모차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을 발표한 직후 트위터에 “시리아의 평화가 철군으로 깨지게 됐다”고 비난했다. 키언 전 차장은 2016년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인 측으로부터 국방장관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고사했다.

이라크전의 승장이면서도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무력 사용에 신중했던 매티스가 떠나면서 백악관은 이제 더욱 예측불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한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해 10월 방한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았을 때 군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군복을 함께 입자고 요청했지만 사양했다. NYT는 “매티스 장관이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것은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JSA에서 매티스의 대북 메시지는 “우리의 목표는 전쟁이 아니라 비핵화”였다.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를 쓴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 WP 부편집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주한미군 가족에게 한국을 즉각 떠날 것을 지시하려고 했다. 이는 대북 공격의 준비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며 만류한 게 매티스와 참모진이었다. 매티스 장관을 처음 접했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그와의 통화 직후 “교양 있는 노신사와 대화한 것 같다”고 주변에 말했다. 외교 소식통들은 “매티스 장관이 없는 내년 비핵화 협상이 틀어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코피 작전’을 꺼내들 텐데 이를 막을 인물이 마땅찮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별명 ‘카오스’ 진짜 뜻 ‘뛰어난 해결책 가진 대령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당시 해병대 준장)이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국제공항에서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당시 해병대 준장)이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국제공항에서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매티스 장관의 또 다른 별명은 ‘카오스(Chaos)’다. 본인도 이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카오스는 ‘혼돈’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별명은 그가 해병대 연대장(대령) 시절 얻었다. 당시 그의 부하들은 ‘대령님은 언제나 뛰어난 해결책을 갖고 있다(Colonel has an outstanding solution)’고 불렀다. 이 문장의 앞글자만 딴 게 ‘Chaos’다.

부하들을 사로잡는 그의 지휘력은 휴가 때 일화로도 알려져 있다.

해병대 장성 시절 휴가 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사한 해병 장병들의 집을 찾아가 유족에게 “당신 아들(딸)은 정말 훌륭한 군인이었다. 해병은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한 건 유명하다.

이철재·심새롬 기자 seajay@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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