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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끝나는데 갈 곳 없어…돌고래 ‘태지’의 기구한 운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태지로 추정되는 돌고래가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관람객과 사진찍기에 동원되고 있다. [사진 핫핑크돌핀스]

태지로 추정되는 돌고래가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관람객과 사진찍기에 동원되고 있다. [사진 핫핑크돌핀스]

서울시의 마지막 돌고래인 ‘태지’의 소유권 이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해양환경시민단체인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11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사육하는 고래류는 큰돌고래, 벨루가 등 총 38마리에 이른다. 수족관에 살면서 주로 전시와 공연, 체험 등에 이용되고 있다.

이 중 제주 퍼시픽랜드가 위탁 사육 중인 태지는 서울시가 소유한 마지막 돌고래다. 수컷 큰돌고래인 태지는 일본 다이지에서 포획된 이후 2008년 서울대공원에 수입돼 9년 동안 돌고래 쇼 무대에 섰다.

돌고래 방류 조치에도 홀로 남은 태지 

폐쇄를 앞둔 서울대공원 돌고래 관람장에서 물위로 뛰어오른 태지. [사진 핫핑크돌핀스]

폐쇄를 앞둔 서울대공원 돌고래 관람장에서 물위로 뛰어오른 태지. [사진 핫핑크돌핀스]

태지는 서울대공원에서 남방큰돌고래인 ‘금등이’, ‘대포’와 함께 생활하다가 지난해 홀로 남게 됐다. 서울대공원이 ‘돌핀-프리(dolphin free)’ 선언을 하고 돌고래 쇼장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제돌이를 비롯해 지금까지 제주 남방큰돌고래 7마리를 자연으로 방류했고, 국내 최초로 돌고래 쇼가 시작된 서울대공원 돌고래 쇼장의 문을 닫았다.

서울대공원 돌고래 관람장에서 사육했던 돌고래들. 왼쪽부터 대포와 금등이, 태지. [사진 핫핑크돌핀스]

서울대공원 돌고래 관람장에서 사육했던 돌고래들. 왼쪽부터 대포와 금등이, 태지. [사진 핫핑크돌핀스]

제주 앞바다가 고향인 금등이와 대포 역시 제주도로 다시 방사됐지만 태지는 야생 방류 대상에서 제외됐다.

종이 다른 데다가 포획 지점이 아닌 국내 바다에 방류할 경우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칫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돌고래 포획이 허용되는 일본 다이지 앞바다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서울대공원 수조에 홀로 남은 태지는 자해를 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6월 제주 퍼시픽랜드로 옮겨져 지금까지 위탁 사육되고 있다.

퍼시픽랜드는 조련사가 돌고래와 수중 공연을 하고, 공연 후에는 어린이들이 돌고래를 만지고 사진을 촬영하면서 수익 활동을 하는 업체다.

해양환경단체인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공동대표는 “현장을 모니터링한 결과 태지는 관람객들과 사진 찍기에 동원되는 등 여전히 돌고래쇼에 이용되고 있었다”며 “서울시가 돌고래쇼 업체로 태지를 어물쩍 넘기고 손을 털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 쉼터 조성해 태지 보호해야” 

돌고래바다쉼터추진시민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돌고래 '태지'의 위탁 사육기간 연장과 돌고래 바다쉼터 마련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돌고래바다쉼터추진시민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돌고래 '태지'의 위탁 사육기간 연장과 돌고래 바다쉼터 마련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태지의 위탁 계약 기간이 올해 말로 끝난다는 것이다. 위탁 사육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 한 태지의 소유권은 내년 1월 1일부터 퍼시픽랜드로 넘어가게 된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로 구성된 돌고래바다쉼터추진시민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태지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며 계약 연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유권을 가진 서울대공원 측은 계약만료를 직전에 두고도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쇼장을 이미 폐쇄한 상황에서 태지를 다시 데려온다고 해도 관리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측에서는 계약 연장과 함께 태지가 수족관에서 벗어나 바다와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인근 해역에 ‘바다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 공동대표는 “캐나다에서는 최근 수족관 돌고래의 사육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수족관 사육 고래류를 위한 바다 쉼터를 만들고 있다”며 “태지 역시 지금처럼 수족관에 갇혀 지낼 경우 폐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바다 쉼터를 조성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태지한테 제일 좋은 방향을 찾기 위해 논의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며 “바다 쉼터는 예산도 많이 들고,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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