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대 미 통상외교|한남규<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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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제오늘 미국수도 워싱턴은 한국사람들이 점령한 느낌이다. 서울손님들이 몰려들어 연설하고 회담하고 계약하는 등 한국회오리바람이 폭발하고 있다.
10일 백악관 길 건너 유서 깊은 헤미 애덤스 호텔에서는 아시아나 항공과 미 보잉사간 여객기 구매계약이 체결되고 비슷한 시간 상공회의소에서는 남덕우 무역협회회장의 연설이 있었다.
11일 이른 아침부터 미 무역대표부에는 김철수 상공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고위통상실무협상단이 미 관리들과 대좌하는가 하면 오후 의사당 한 회의실에서는 대한항공이 미 맥도널 더글러스 여객기 구매계약 서명식을 가졌다. 이어 이날 저녁 호화스런 리츠칼튼호텔에서는 12일부터 열리는 한미재계회의에 앞선 환영리셉션과 만찬이 있었다.
한국사람들의 때아닌 워싱턴쇄도는 5월까지 이어진다. 상공장관·부총리가 차례로 들이닥칠 예정이다.
각기 형태와 구성이 다른 행사들이지만 소란의 진원은 미 행정부의 소위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절차에 연유한다.
종전에도 미국의 통상제재조치가 예상될 때마다 비슷한 법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해마다 대규모 구매사절단이 미국에 파견됐고 특히 84년 컬러텔리비전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판정을 앞두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진호 상공장관을 단장으로 한 고위관민합동 구매협상대표단이 급파된 일도 있었다.
이처럼 거국적 대표단 활동성과에 기대를 걸었던 한국민은 그러나 다른 대 미 수출경쟁국과 비교가 안되게 높은 비율의 덤핑관세율을 판정 받아 큰 실망을 한 경험을 안고 있다.
이번에 워싱턴에 몰려드는 인물들의 규모와 직위는 과거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예상되는 미 조치의 충격과 보복의 여파가 과거보다 클 것이기 때문에 사전대비 몸짓도 커졌는지 모른다.
문제는 동시폭발성의 이 같은 외향적 활동이 가장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물론 여건이 다르지만 이번 조치에 대비해 일본은 공개활동을 지양, 변호사·로비스트 등을 통한 은밀한 공작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추후 일이 잘못 풀리더라도 최선은 다했노라는 책임회피적·홍보적 활동보다는 실질효과를 겨냥하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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