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교육 불신 키운 헬리오시티 혁신학교 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교육팀 기자

남윤서 교육팀 기자

“교육감 자녀는 외고를 졸업했는데, 동의 없는 혁신학교 밀어 넣기는 내로남불의 극치다.”

지난달 초 서울시교육청이 송파구 헬리오시티(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단지 내 3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자 입주 예정자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격렬히 반대했다. 지난달 30일 시교육청 앞으로 몰려간 주민들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난하며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12일 뒤늦게 대화에 나선 조 교육감은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한 주민에게 등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결국 시교육청은 한발 뒤로 물러나 3개 학교를 1년간 ‘예비 혁신학교’로 운영한 뒤 학부모 결정에 따라 혁신학교 전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입시·지식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활동 등 학생 중심 교육을 표방한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학업에 소홀한 학교’로 인식되면서 기피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상급 학교 입시가 중요해지는 중·고교로 갈수록 더하다. 서울 시내 199개 혁신학교 중에서 고등학교는 14곳에 불과하며, 강남·서초구에는 한 곳도 없다. 강남구 중산고가 2014년 혁신학교로 지정됐다가 학부모 반대로 철회됐다. 이처럼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가운데, 교육청은 혁신학교 전환 시 학부모 50%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신설 아파트 단지인 헬리오시티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학부모가 없는 신설 학교의 경우 교육감이 정책적 필요에 따라 임의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 결정 과정에 분노했다. 조 교육감은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정상화 모델, 미래 교육의 방향’이라고 믿고 있지만 정작 자녀를 보내야 할 학부모들도 그렇게 믿는지는 따져보지 않았다. 조 교육감은 현재 199개 혁신학교를 2022년까지 250곳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혁신학교를 늘리다가는 제2, 3의 헬리오시티 사태가 반복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교육청의 일방통행이 교육 수요자의 신뢰를 잃게 한다는 점이 문제다. 헬리오시티 입주 예정자들은 여전히 예비 혁신학교가 실질적으로 혁신학교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교육 정책은 끊임없이 교육의 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뢰를 잃은 사람에게 설득당할 사람은 없다.

남윤서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