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냉대 받은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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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냉대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23일 오전 제58회 유엔총회 개막연설에서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유엔이 참가해 달라면서 지지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동안 유엔 및 동맹들과 갈등을 빚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지도 않았고 "도와달라"며 적극 나서지도 않았다.

"이라크가 헌법을 만들고 선거를 치르려면 유엔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우회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게다가 연설의 상당부분을 국제적 성(性)매매 문제에 할애하는 등 주제도 산만했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다른 나라들을 달래서 이라크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연설을 계획했다면 결과는 실패"라면서 "연설에서 열정도 느낄 수 없었다"고 혹평했다.

미국 입장에선 혹 떼려다 혹을 붙였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처음으로 '부시 독트린'으로 불리는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공개 비판했기 때문이다.

아난 총장은 "선제공격론은 58년간 지속돼 왔던 세계 평화와 안정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이 논리가 받아들여지면 일방적이고 무법적인 힘의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개방된 세상에서는 누구도 혼자 살 수 없고, 누구도 전체의 이름을 앞세워 혼자 행동할 수 없다"고 미국을 겨냥한 뒤 "무법의 혼란을 수용할 수는 없으며 유엔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아난 총장과 사라크 대통령 모두 '미국=무법'의 등식을 세운 것이다.

민주당의 톰 대슐 하원 원내총무는 "부시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밥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오랜 동맹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공격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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